경제에 대한 전문성의 깊이에 차이가 없지 않겠지만, 이들을 학문의 좁은 프레임에 가두는 건 온당치 않다. 그런 잣대로 정책 역량의 우열을 판단할 수도 없다. 지금은 사회과학과 인문학,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학제적(學際的) 접근이 대세다. 그럼에도 전임 정책실장들은 늘 ‘경제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부정할 수 없다. 검증되지 않은 소득주도성장 실험에 매달린 지난 2년여 동안 한국 경제가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민생은 더욱 피폐해진 데 대한 그들의 책임이 크다.
김 실장은 취임 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자신이 경제학자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경제학자가 지켜야 할 자세도 언급했다. 경제는 먹고사는 문제다. 경제학의 목표는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증진해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하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실현이다. 자원의 희소성과 가치를 분석하고, 개인과 집단의 합리적 선택을 경제사(經濟史)의 흐름 속에서 찾아내는 것이 본령이다. 정부와 기업, 가계 등 경제주체들의 상호작용과 이해관계, 숫자로 나타나는 거시지표들을 주로 다룬다. 반면 경영학은 제한적인 비즈니스 개념이다. 기업 경영전략과 재무·회계, 인적자원 및 생산관리, 마케팅 등의 실무가 연구 대상이다. 기업조직의 구조와 행동원리를 분석해 경영여건에 따른 최선의 해법과 리더의 의사결정을 도출한다.
김상조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재벌 저승사자’ 이미지가 깊이 각인된 그가, ‘경제를 아는 정책실장’으로서 받는 기대는 역설적이다.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밀어붙이는 동안 곤두박질한 성장, 수출, 투자, 고용 등 악화일로의 경제상황과, 기업 및 가계 등 경제주체의 절박한 위기감을 반영한다. 김상조의 정책은 반드시 달라져야 한다는 시장의 요구이기도 하다.
경제의 핵심은 합리적 자원배분이고, 정책의 성공 여부는 시장의 호응에 달려 있다. 소득을 늘려 내수를 진작하고 투자를 촉진함으로써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소득주도성장 전략은 그런 점에서 실패했다.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오히려 영세 자영업자들을 무너지게 하고, 저임금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없앴다. 경제의 토대인 시장을 무시하고 정치이념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김 실장은 “사실이 달라지면 생각을 바꾼다(When the facts change, I change my mind)”라는 케인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정책 유연성을 강조했다. 경제학자로서 정부의 시장 개입을 중시한 케인스에 큰 영향을 받았지만, 하이에크의 시장자유주의에도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실 그는 공정거래위원장 재임 때 규제 완화를 반대하는 진보진영을 향해 “30년 전의 문제의식에 사로잡힌 경직성과 조급증 탓에 개혁이 실패할 우려가 크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럼에도 수십년 재벌개혁을 신념으로 삼아온 그의 이런 발언이 생경(生硬)한 건 어쩔 수 없다. 편견의 본래 면모가 감춰진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는 시장의 의구심도 마찬가지다.
시장은 냉정하고 무섭다.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는 의도와 거꾸로 반응하면서 복수한다. 정부가 시장을 마음대로 이끌 수도 없다. 이 점은 김 실장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지금 경제현실과 정책의 한계를 제대로 보고, 시장중심의 성장노선으로 회귀하는 일보다 급한 건 없다. 전임자들처럼 소득주도성장의 맹목적 환상과 편향된 사고를 고집하면서 성공이 코앞에 있다고 주장하는 ‘희망고문’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현 정부의 임기 반환점이 다가오고 있다. 경제는 성과의 팩트로 말해야 한다. 모든 정권의 성패는 경제로 가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