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순익 2조 원대의 우량 공기업으로 꼽히던 한국수력원자력이 창사 이래 최악의 적자를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핵심 먹거리인 원전 사업이 정책적 암초로 휘청이고 있어서다.
9일 이투데이가 입수한 한수원 내부문서에 따르면, 한수원은 올해 최대 4912억 당기 순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했다. 2001년 한수원이 출범한 이래 연간 기준으로 최대 적자다. 한수원은 2016년 2조4712억 원의 당기 순이익을 냈지만 흑자 폭이 매년 줄더니 지난해 1020억 원 적자로 돌아섰다.
한수원은 보고서에서 경영 악화 이유로 원전 이용률 회복 부진과 신규 원전 가동 지연, 사회적 비용 부담 압박 등을 꼽았다.
가장 큰 요인은 원전 이용률이 예전만큼 올라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올 1분기 원전 이용률은 75.8%다. 지난해 같은 기간(54.9%)보다는 높아졌지만 한수원이 한창 흑자를 내던 때의 이용률 80~90%에 미치지 못한다. 현재 가동 가능한 원전 23기 중 5기가 계획예비정비로 운전을 멈춘 상태다. 원전업계에선 안전 당국이 정책적으로 정비 기준을 높게 잡아 원전 이용률이 떨어졌다고 볼멘소리를 낸다.
새로운 먹거리가 될 신규 원전 가동도 늦어지고 있다. 신고리 4호기는 2017년 8월 공사를 마치고 지난해 가동할 계획이었지만 지금까지 운전에 못 들어가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심사가 엄격해지면서 올 2월에야 가동 허가를 받았다. 역시 지난해 가동 예정이던 신한울 1호기도 안전 기준이 강화돼 아직 준공도 못 했다. 원안위 심사를 고려하면 신한울 1호기는 올해 안에 허가를 받을지도 불투명하다.
여기에 정부는 4일 확정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와 핵연료, 방사성 폐기물에 대한 과세 규모와 방식을 종합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우선 검토를 시작하는 것뿐이라는 입장이지만 현 정부의 정책 기조로 볼 때 세(稅) 부담 확대 가능성이 크다고 원전 업계는 보고 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원전 사업은 100년을 보고 수익을 회수하는 사업인데 조기 폐쇄 등으로 운영 기간을 줄이니 적자가 나는 건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한수원 측은 “4900억 원 적자는 지난해 연말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고 세운 시나리오일 뿐”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