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KIKO) 재조사 안건이 이달 중후반께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에 상정된다. 윤석헌 원장이 “원점 재조사”방침을 내걸고 지난해 6월 진상조사에 돌입한 지 1년 만이다. 은행과 피해기업의 강대강 대치 속, 분조위 결과에 따라 윤 원장의 리더십도 함께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분쟁조정국은 키코 사건 조사 내용을 이달 중후반께 분조위에 상정할 예정이다. 6월 초 안건을 상정하리라는 윤 원장의 바람과 달리 실무선에서는 준비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당장 1~2주 안에는 올리기 어렵고 그 이후로도 넘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분조위는 안건이 회부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이를 심의해 조정 결정을 해야 한다. 조정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 8월 말까지 지난한 과정을 겪을 수 있다. 양측 중 하나라도 중재안을 수용하지 않을 시 법정 소송까지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통상 금감원 분쟁조정 절차는 3~6개월가량이 걸린다. 키코 재조사 건에 1년 넘게 공을 들이는 이유는 그만큼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 분조위 대상은 4개 기업에 불과하다. 하지만 각 은행 입장에서는 합의안이 채택돼 기준이 되면 향후 수천억 원의 배상 책임이 생길 수도 있는 셈이다.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이번 중재안을 기준으로 앞으로 200여 개 기업이 추가로 분쟁 조정을 신청할 것임을 예고했다.
금감원은 은행에 불완전판매 책임을 물어 피해 금액 일부를 배상하도록 하는 중재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상품판매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부’를 위배했다는 것이다. 쟁점은 분쟁신청 기업 4개사에 각각 어느 정도를 배상해줘야 할 것인지다. 그간 판례에 따라 피해 보상액은 10~50% 수준에서 나올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는 1500억 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아직까지 양쪽은 한발도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조붕구 위원장은 “10~50%는 턱도 없는 얘기”라며 “사법적폐 재판거래 내용을 기준점으로 금감원이 판단한다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분조위 조정안은 권고 성격으로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은행은 조정안을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 분조위 피신청 은행 관계자는 “은행은 공동 대응한다는 생각으로 소송까지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키코 사태의 법적 채권 소멸시효는 끝난 상태다.
이번 조정이 성사되지 않으면, 키코 재조사를 ‘소비자보호’ 기조의 한 축으로 삼아온 윤 원장의 리더십에도 큰 타격을 입게 될 전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10년 전 키코사태 당시 피해 기업을 돕기 위해 금감원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며 “별 실익은 없이 혼란만 가중시키는 ‘제2의 즉시연금 사태’를 빚는 것 아니냐”며 우려했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 안에서 움직일 때 미리 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이다. 2008년 금융위기로 환율이 폭등하면서 당시 키코에 가입했던 919개 중소기업은 수조 원 규모의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법원은 2013년 키코 판매는 불공정 거래 행위가 아니라고 판결하면서 불완전판매 혐의에 대해 일부 배상 책임을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