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펀치] 영혼 있는 공무원이란

입력 2019-05-07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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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공직자는 국민과 함께 깨어 있는 존재가 되어야지, 정권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공직자가 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8월 2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 때 한 말이다. 맞는 말이다. 지난 2년간 이 말대로만 됐다면 우리나라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나라가 됐을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말도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지난 2년 동안 문재인 정권은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실천했을까?

“현재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법률안들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 “형사사법 절차는 반드시 민주적 원리에 의해 작동돼야 한다”는 문무일 검찰총장의 말 때문에 여권은 부글부글 끓고 있는 눈치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법에 따른 절차 자체를 검찰이 부정하는 것은 정말 유감스럽다”며 “국민의 대의기관에서 각 정당이 합의한 것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고 반응한 것만 봐도 그렇다. 홍익표 민주당 대변인도 “검찰은 불만이 아니라 국민 눈높이에 맞는 대안을 내놔야 한다”며 “좋은 제안이라면 국회도 받을 수 있지만 개혁 방해나, 조직 이기주의, 제 밥그릇 챙기기 식으로 간다면 검찰은 더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청와대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비판을 삼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지금 여권에서 나오는 말들을 보면 청와대의 심정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지금까지 여당인 민주당의 행태를 보면 청와대의 의중과 무관한 입장을 가진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여당의 반응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우선 조직이기주의라는 표현을 생각해 보자. 문무일 총장의 발언이 조직이기주의의 표현이라면, 지금 경찰의 주장은 조직이기주의가 아닌지 묻고 싶다.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정부 조직의 주장은 조직이기주의가 아니고, 정부의 입장에 반하는 주장을 하는 것만 조직이기주의인지가 궁금하다는 의미다. 문 총장의 발언에 동조하는 진보 학자들의 발언이 줄을 잇고 있는데, 여당의 논리대로라면 이들은 검찰의 조직이기주의에 일조하고 편승하는 사람들이다. 아마도 이번 검경 수사권 조정에 문제를 지적하는 학자들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명예가 심히 훼손됐다고 생각할 것이다.

뿐만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직후 ‘영혼 있는 공무원’이 되라는 말을 한 것은 문자 그대로 정권의 정책에 로봇처럼 움직이는 공무원이 되지 말라는 당부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문 총장이야말로 진정한 ‘영혼 있는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여권에서 비난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 아마도 문 대통령이나 여권이 주장하는 ‘영혼 있는 공무원’은 과거 정권하에서 반기를 든 공무원에게만 국한된 것 같다.

자신들의 주장은 항상 옳고 선하고 정의롭기에, 자신들의 정책적 혹은 정치적 행위에 반기를 드는 것은 ‘영혼 있는 공무원’의 행위가 아니라 ‘조직이기주의적 발상’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의기관에서 각 정당이 합의했을 뿐 아니라, 국회법 절차에 따라 결정된 행위 혹은 사안에 반기를 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국회특위 투표 과정에서 ‘반대할 것 같은’ 의원을 배제하고 ‘찬성할 것 같은’ 의원을 그 자리에 채워서 투표를 진행한 이른바 ‘사보임 사태’는 국회법에 충실한 것인지 묻고 싶다.

여권이 문 총장의 언급을 반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 한 말대로라면, 문 총장의 반기를 자신들의 주장을 돌이켜보고 성찰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권은 그럴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다. 문 총장에 대한 비방에 몰두하고 있는 것 같아 한숨이 나온다. 공무원을 평가하는 데서도 편가르기식 사고에 입각해 평가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은 출범 2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편가르기식 편협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언제나 자신들의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것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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