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은 경술국치 뒤 비통한 감정을 견디지 못해 '절명시'를 남기고 순절한 독립운동가다. 전남 광양 출신으로, 젊은 시절 상경해 강위·이건창·김택영과 함께 한말 4대 시인으로 꼽혔다. 구례로 돌아간 뒤에는 평생 국운을 걱정하며 책을 읽고 저술 활동을 했다.
매천야록과 오하기문은 황현의 대표 저서다. 매천야록은 흥선대원군이 집정한 1864년부터 1910년 일제가 국권을 빼앗은 때까지 역사를 정리한 글이다. 친필 원본 7책으로 한국근대사 연구에 중대한 가치를 지닌 사료로 평가된다. 매천야록 초고로 추정되는 오하기문도 일곱 책으로 이뤄졌다. 제목은 오동나무 아래에서 글을 기술했다는 뜻을 가진다. 19세기 후반부터 1910년까지 역사적 사실과 의병항쟁을 비롯한 항일 활동이 자세히 기록됐다.
절명시첩에는 황현이 1910년 8월 경술국치 다음 달인 9월에 지은 절명시 네 수와 서간, 상량문 등이 담겨있다. 그는 이 글을 남기고 사랑채였던 대월헌에서 순절했다. 정부는 고인의 충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매천 황현 시문은 황현의 친필 시 584수를 모아놓은 시집 네 권과 그가 지은 다양한 글을 모은 문집 세 권을 가리킨다. 그의 시에는 지식인의 책임의식이 깊이 투영돼 있어서 우국충절의 지사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고 평가된다. 또한, 문집에서는 그가 지은 다양한 글을 싣고 있어 그의 사상과 활동을 파악할 수 있다.
매천 황현 유묵·자료첩에 포함된 편지와 신문기사 또한 당대 지식인의 사고와 동향을 알 수 있는 자료로 꼽힌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국가적 위기와 민족의 존망, 사회 상황 등을 알 수 있는 사료다.
문화재청은 또 다른 항일문화유산인 '윤희순 의병가사집'과 '서울 한양대학교 구 본관'도 문화재로 등록했다. 의병가사집은 여성 독립운동가 윤희순이 의병들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지은 낱장 친필 가사들을 절첩(折帖) 형태로 이어붙인 순한글 가사집이다. 여성 독립 운동가의 문집이라는 점에서 희소성이 크고, 근대 가사와 한글 표기 방식 등 국어학과 국문학 연구 등의 중요 기록 자료로서 가치를 인정 받는다. 1956년 대학 본부로 건립한 한양대 구 본관은 신고전주의 양식의 디자인적인 요소가 보존된 건축물이다. 외관을 석재로 마감하고 정면 중앙부에 열주랑을 세웠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번에 문화재로 등록된 8건을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 등과 협력해 체계적으로 본 및 관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