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미국 ‘라이프(LIFE)’ 종이잡지의 폐간을 소재로 삼고 있다. 종이잡지 발간을 중단하고 온라인 매체로의 전환을 선언한 ‘라이프’.
종이잡지로 발간되는 마지막 ‘라이프’의 표지를 장식하려 했던, 전설의 사진작가 숀 오코넬의 표지용 사진이 행방을 감춘다. ‘라이프’ 마지막호에 사용할 사진을 찾기 위해 사진 인화부의 평범하고 소심한 직원 월터 미티는 숀 오코넬을 찾아 천신만고의 여정을 떠난다.
‘라이프’. 1936년 11월 창간한 미국의 시사잡지. 글로 된 기사를 뒷받침하기 위해 사진이 들어가는 기존 저널리즘의 양식을 벗어나, 사진이 주인공이 되고 기사가 이를 뒷받침하는 ‘포토 저널리즘’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 잡지사. 물론 영화에서의 폐간 과정엔 각색이 들어갔지만, 실제 ‘라이프’도 영화에서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2007년 4월 종이잡지를 폐간한다.
‘라이프’는 왜 종이잡지를 폐간했을까? ‘라이프’ 자체의 문제라기보단 전통 미디어 산업 쇠락의 신호탄이었다고 말해야 온당한 평가다. ‘라이프’의 전성기는 1960년대 말. 세상에 사진기와 사진 잘 찍는 사람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 ‘라이프’라는 잡지가 갖는 희소성과 가치는 대단히 높은 것이었다. 경제 활동을 하는 인구 대부분이 고성능 카메라 기능을 갖춘데다, 원하는 사진을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는 휴대전화를 모두 소유한 현재까지 ‘라이프’의 종이잡지가 남아있었다면, 기자는 그것이야말로 기적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월터 미티는 라이프의 핵심인 바로 그 ‘사진’들을 인화하는 인화부 직원이다. 웹사이트 매체로서의 전환을 선언한 영화 속 종이잡지 ‘라이프’. 본격적인 디지털카메라의 시대가 찾아온 2000년대. 사내 상황으로 보나, 시대의 흐름으로 보나, 사진 인화부 직원 월터 미티는 기술 발전에 의해 가장 먼저 직장을 잃게 될 직원이다. 월터 미티는 ‘라이프’ 그리고, 미디어 산업 전반의 퇴조를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 주는 인물이다.
영화 전반부 내내 월터는 멍하니 서서 환상을 보는 시간이 많다. 영화 앞일 수록 기괴함의 정도가 심한 환상을 보던 월터. 그의 환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상적인 수준에 가깝게 다듬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정리해고를 받아들인 영화 끝 부분에서는 환상을 보지 않게 된다.
라이프가 폐간하던 순간에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미디어 기업들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환상을 꿈꾸곤 한다. 양질의 콘텐츠만 생산해 낼 수 있다면, 기술 발전이야 어떻든 대중들은 우리 잡지를, 신문을, 방송을 변함없이 사랑해 줄 것이라는 그 환상.
전설의 사진작가가 ‘작가로서 인생의 정수’를 담아서 찍었다는 ‘라이프’ 지(紙) 마지막 호를 장식할 표지 사진. 월터 미티는 문자 그대로 ‘온 지구를 다 뒤져서’ 사진을 구해오는 데 성공했건만, 결과적으론 ‘라이프’에서 해고된다. 아무리 공전절후의 콘텐츠를 발굴해 온다 한들, 시대의 물결과 기술의 발달은 사진 인화부 직원 한 명의 일자리를 보전해 주기엔 너무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던 것이다.
미디어 기업의 영원한 환상이 깨지는 그 순간, 월터의 엉뚱한 상상들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월터는 ‘라이프’를 떠나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옛 미디어를 상징하는 영화 속 월터는 새 길을 찾았지만, 미디어들은 빠르게 변하는 기술 속에서 아직 새로운 길을 찾지 못 했다.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는 회사는 지금도 많지만, 그것을 ‘뉴미디어의 해답’이라고 내놓을 만한 대안을 찾은 미디어는 현재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온라인 미디어 ‘라이프’는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또 신문은, 미디어 산업은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미디어 기업들은 벌써 수 십년 전부터 제기되고 있는 이 질문에 대해 답을 생각할 만한 여유가 없다. 해답을 찾기 커녕 한 해가 다르게 달라지는 기술발전에 맥없이 끌려다니며 살아남기 바쁜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시시각각 강해지는 위기의 파도는 이 산업의 존폐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라이프’의 목적이다”
영화에서 언급되는 잡지사 ‘라이프’의 모토이며, 모든 저널리스트들이 꿈꾸는 이상향이기도 하다. 만일 끝내 어느 누구도 ‘뉴미디어의 해답’을 찾아내지 못 한다면,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수도 있는 목표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