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이 흔들리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0일(현지시간) ‘압박받는 중산층(The Squeezed Middle Class)’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OECD는 보고서에서 선진국의 중산층이 줄었다며 소득은 정체된 반면 주택, 교육, 의료 등 비용이 급증하면서 삶의 질 또한 팍팍해졌다고 밝혔다.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은 중산층의 위기를 “바위투성이 물 위에 뜬 보트 같다”고 비유했다.
OECD에 따르면 선진국의 중산층은 갈수록 얇아지고 있다. OECD는 각국 국민 평균 소득의 75~200% 범위에 속한 가구를 중산층으로 정의하고 있다. OECD 36개국 국민의 대부분이 이 범주에 해당한다.
OECD는 중산층 비율이 1980년 64%에서 현재 61%로 줄어들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중산층 비율이 51%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았다. 한국은 61%로 OECD 평균 수준이었다.
세대 간 중산층 비율 축소도 두드러졌다. 베이비붐 세대(1942~1964년 출생)가 20대일 때 중산층에 차지한 비율이 68%였던 반면, 밀레니얼 세대(1983~2002년 출생)는 그 비율이 6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산층의 감소 원인으로 OECD는 소득 정체 현상을 지목했다. 현재 중산층의 소득이 10년 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지출은 크게 증가했다. 대표적인 게 집값이다. 대도시에서 한 가구가 60㎡ 아파트를 마련하려면 연 소득을 10년간 모아야 한다. 1980년대에는 평균 6년이 걸렸다. 독일의 경우, 2012년 이후 베를린의 주택 임대료는 70%, 뮌헨은 43%나 뛰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비관리직 근로자의 임금은 8.4% 오르는 데 그쳤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일자리 불안정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자동화로 중산층 6명 중 1명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고 OECD는 평가했다. 고소득층에서는 10명 중 1명이 위험에 노출된 것과 대조된다.
중산층의 가계 부채도 심각하다. OECD는 “중산층 가구 중 20%가 버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며 부유층과 빈곤층보다 부채가 많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면서 8명 중 1명은 자산의 75% 이상을 빚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OECD는 중산층을 ‘민주주의의 기반’이라고 비유하며, 경제 불안정 상태가 지속될 경우 세계 경제 시스템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중산층의 불안은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 고립주의, 포퓰리즘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고 했다.
구리아 총장은 “현재 세대는 교육수준이 가장 높지만 부모 세대와 같은 수준의 삶의 질을 누릴 가능성은 낮다”며 “중산층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각국 정부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OECD는 부유층에 높은 세금을 매겨 중산층의 세금 부담을 줄여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