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경과는 단순하다. 민주당 소속의 김정호 의원은 지난 20일 오후 9시께 김포공항에서 김해공항행 항공기에 탑승하면서 탑승권과 신분증을 제시해 달라는 공항 직원의 요청을 받았다. 이때 김 의원이 투명한 케이스에 들어있는 신분증을 제시하자 해당 직원은 신분증을 꺼내서 보여 달라고 했고, 김 의원은 “지금껏 항상 (케이스에서 꺼내지 않고) 이 상태로 확인을 받았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직원이 재차 요청하자 김 의원은 “책임자가 누구냐, 왜 고객한테 갑질을 하느냐, 매뉴얼을 가져오라”며 언성을 높이며 항의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언론은 욕설을 했다고 했지만, 당사자인 김 의원은 이 부분에 대해 강력히 부인하면서 자신은 오히려 공항직원들의 갑질 피해자이며, 다른 고객들을 대신해 갑질에 항의한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여론의 관심과 김 의원의 해명은 이 과정에서 욕설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 여부에 쏠려 있다. 중요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매뉴얼에 있든 없든, 왜 직원이 신분증을 케이스에서 꺼내 달라고 요구했느냐이다.
‘항공보안 표준절차서’에 따르면 항공경비요원은 신분 확인시 ‘승객이 오면 인사를 한 뒤 탑승권과 신분증을 제출토록 안내하고 두 손으로 탑승권과 신분증을 받고 육안으로 일치 여부를 확인하되 위조 여부 등도 확인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규정만 보자면 케이스에서 꺼내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하지만 ‘위조 여부’ 확인을 위해서는 꺼내 달라고 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컬러 프린터로 타인의 신분증을 위조해 케이스에 넣은 형태로 제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공항직원이 신분증을 케이스에서 꺼내 달라고 한 중요한 이유는 ‘항공 보안’을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라면 설령 규정에 명시돼 있지 않아도 그냥 따르는 것이 현명한 처신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김 의원은 규정에 없는 요구를 하는 것을 갑질이라고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항공 보안을 위해서는 규정보다 더 철저히 일을 처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국회의원이라고 예외를 인정해서도 안 된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김 의원은 공항 직원의 요구를 따랐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김 의원은, 아주 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공항 귀빈실을 이용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은 몸을 낮추는 사람이라고 주장하지만, 다소 억울한 점이 있을지라도 자신이 공인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공인이 자신의 억울함을 앞세우면 곤란하다. 그만큼 공인은 사회적 책임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논란은 엉뚱한 곳에 불똥이 튈 수도 있다. 지금 국회에서는 선거제 개편 논의를 막 시작하는 참이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단식을 해가면서까지 논의를 이끌어 낸 사안이다. 그런데 이 사안에서 가장 첨예한 부분이 의원 수를 늘리는 문제다. 이른바 연동형 비례대표를 제대로 실시하려면 이론적으로 의원 수를 늘리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의원 수를 늘리는 데 찬성하지 않는다. 가뜩이나 이런 상황에서 여당 국회의원이 갑질 논란에 휩싸였으니, 의원 수를 늘리자고 주장하는 측은 더욱 곤경에 빠질 수밖에 없게 생겼다. 한마디로 민주당 김정호 의원의 갑질 논란은 자신의 이미지에만 타격을 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논의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때문에 분노한 여론을 쉽게 가라앉힐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민주당이나 본인이 사과한다고 여론의 분노가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며 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당들은 김 의원을 좋은 눈으로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지금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그리고 정의당은 매우 곤혹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시행이 더욱 요원해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정치는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 딱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