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추상미 씨가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로 돌아왔다.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궁금해하는 이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놀랍게도 20년 넘게 배우로 활동한 추 씨는 이번에는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 관객들을 찾았다. 영화는 역사와 개인의 상처를 추 씨의 시선으로 들여다 본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추 씨의 첫 장편 영화이기도 하다. 그가 현재 준비하고 있는 또 다른 장편 영화 '그루터기들'의 준비 과정을 담은 프리뷰 역할도 한다. '그루터기들'은 전쟁고아로 폴란드에 갔지만, 병에 걸려 돌아오지 못했던 북한 소녀 김귀덕의 실제 이야기를 극으로 담았다. 현재 시나리오는 3고까지 진행됐다.
추 씨는 6·25 전쟁 당시 전쟁고아 1500여 명이 폴란드로 건너갔다는 사연에 대한 궁금증에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1953년 작은 시골 마을 폴란드 프와코비체의 양육원에 1270명의 북한 전쟁고아들이 이송됐는데, 아이들은 2년 전 러시아로 보내졌으나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하고 건강만 나빠진 상태였다. 그들을 사랑으로 감싸 안은 건 푸른 눈의 폴란드 선생님들.
메가폰을 잡은 추 씨를 10일 서울 영등포구 국제금융로 모처에서 만났다. 한국전쟁 때 많은 고아가 폴란드로 갔다는 다소 생소한 이야기는 어쩌다 추 씨의 마음속에 박혔을까.
◇ 산후우울증이 가져다 준 이해…"아이에 대한 관심 세상으로 확장"
"타이밍이 중요했어요. 당시 제 삶의 화두는 사랑이 아니었거든요. 영화 앞부분에도 나오지만, 아이를 가진 후 산후 우울증을 겪었어요. 식량을 찾아 헤매는 북한 '꽃제비'의 영상도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됐던 때였죠. 비슷한 시기에 전쟁고아들의 실화를 담은 자료를 우연히 출판사에서 받게 됐어요. 그런 일련의 사건들이 저에게는 운명의 흐름 같았어요. 여러 소재를 놓고 고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여유도 없었어요. 그저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들이었죠. 아픈 일들이지만요."
'산후우울증'. 추 씨는 이 가볍지 않은 주제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결혼 후 4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을 때, 연기에 대한 회의감도 함께 찾아왔다. 아이를 갖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몸을 만들었고, 그토록 원하던 임신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내 유산의 아픔을 겪게 된다.
추 씨는 2011년부터 3~4년 동안 산후우울증을 겪었다. 정신과 전문의로부터 '산후 관리를 잘했으면 금방 사라질 수 있었는데, 관리가 잘되지 않아 일반 우울증으로 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아이에 대한 애착과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을 느꼈어요. 또 아이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이요. 제가 어릴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사랑하는 대상을 갑자기 잃을 수도 있다는 심리도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에 대한 아이들이 다 우리 아이처럼 보였어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아이들이 울면 도저히 못 보겠더라고요. 뉴스를 못봤어요.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어요. 신기했던 건 점점 제 문제가 세상의 아이들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됐어요."
'꽃제비' 소녀를 본 추 씨는 인도주의 감정 이전에 '쟤 엄마는 어디에 있는 거야'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먼저 가졌다. 다만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직접 찾아본 결과, 1990년대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으로 300만 명이 아사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추 씨는 "우리는 정말 무방비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분단이라는 게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라는 생각을 마흔 넘어 처음으로 한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때였다. 추 씨는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연출 공부를 시작하자, 더 늦기 전에 공부하자는 마음이었다"며 "39살에 대학원에 입학했다"고 설명했다. 단편 영화 '분장실'(2010) ', '영향 아래의 여자'(2013)를 연출하게 된 배경이다.
◇ "'밝은 아이' 이송, 함께 한 폴란드 여정에서 섭섭함 느꼈었다"
추 씨는 '그루터기들'에 출연할 탈북민 아이들을 선발하는 오디션을 진행한다. 이 과정은 '폴란드로 간 아이들'에 고스란히 담겼다. 밝은 성격, 카메라를 두려워 하지 않는 당찬 자신감, 가무에 능한 이송 씨가 추 씨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송이가 맡은 옥순이라는 역할은 정말 밝아야 해요. 저희 다큐에서 송이는 다소 어둡게 비쳤지만, 실제로는 되게 밝은 친구예요. 다른 아이들은 인터뷰에서 '탈북 과정에 대해 얘기해달라' 하면 벌써 위축되는데, 송이는 '북한 별로 생각나지 않습니다'라고 했어요. 그때부터 자신의 얘기를 다 털어놓지 않고 방어했던 거죠."
이 씨는 북한에서 15살의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10살 차이가 나는 남동생을 자식처럼 키웠다. 하지만 남한에 오는 과정에서 남동생과 헤어졌던 아픔이 있다. 그래서일까. 이 씨는 남동생에 대한 그리움을 전할 때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유독 북한과 중국에서의 생활을 떠올리는 것을 거부하고, 힘겨워 한다.
"처음에는 송이와 함께하는 폴란드 여정에 대해 쉽게 생각했어요. 그저 송이가 탈북 과정에서 겪는 일들이 시나리오의 하나의 팁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죠. 이 영화는 '그루터기들'을 추진하는 과정을 톡 떼어서 보여주는 것이니까 송이의 경험을 취재해 보자는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송이의 스토리가 생길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송이의 스토리가 생기면서 이 영화가 역사를 추적하고 영화를 만들기 위한 중간 과정을 보여주는 다큐에서 그치지 않고, 의미와 가치가 확장될 수 있었어요."
송이의 마음을 열기까지 과정에 대해 묻자, "굉장히 힘들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의도가 무색하게 송이는 자기 경험을 말하지 않았어요. 계속되는 의심과 경계에 저도 섭섭하다 못해 어느 순간 화가 나서 촬영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나중에 카메라감독이 담은 송이의 얘기를 보고 알았죠. 송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애정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냐', '돈 때문 아니냐'라는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돈을 벌려고 했다면 다른 소재를 찾았을 거예요. 하지만 송이가 가진 자본주의에 대한 경계는 이해가 됐고 반성하게 됐어요. 저의 반성적 어조는 내레이션에 담기죠."
그런 이 씨를 안아주고 치유했던 건 폴란드 선생님들이었다. 65년 전 자신들이 가르친 아이들을 잊지 못했던 그들은 이 씨를 마주하자 '어떻게 나왔냐', '거긴 어떤 상황이냐' 등과 같은 질문을 해왔다. 그때마다 이 씨는 말도 통하지 않는 폴란드 선생님들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고. 폴란드 선생님들과 마주하며 감정이 풀어진 이 씨는 추 씨에게도 서서히 자신의 상처를 얘기하기 시작한다.
추 씨는 폴란드 선생님들을 '상처 입은 치유자'라고 표현했다. 영화의 키워드를 '상처의 연대'로 내놓을 수 있었던 것도 그들 덕분이었다. "2차 세계대전으로 개인적인 상처와 역사적인 상처를 모두 겪은 이들이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민족의 아이들을 품고 사랑했던 거잖아요. 그 힘이 얼마나 큰가요. 그 분들의 치유의 힘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 상처에 대해 조명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아우슈비츠, 탈북 아이들, 통일 등 많은 이야기를 한데 묶을 수 있는 게 '상처의 연대'였어요."
◇ '상처의 치유자' 폴란드 선생님들…"연대는 창조를 만든다"
폴란드를 다녀오며 추 씨는 상처에 대해 더욱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는 곧 상처는 악순환과 선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폴란드 선생님들의 모습 속에서 '상처의 선순환'을 찾았어요. 역사도 똑같아요. 독일처럼 들여다 보고 성찰하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반성하는 게 선순환이에요. 그걸 하지 않는 나라가 일본이고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전범국가는 아니었지만, 어찌됐건 상처도 있고, 잘못 판단했던 오류들도 갖고 있어요. 남과 북 모두요. 그런 상처를 대면하는 게 중요해요. 상처를 잊어버리려고 하고 도피했던 송이가 상처를 마주하고 치유했던 것처럼요. 그렇게 새로운 정체성이 세워지는 거죠."
폴란드 촬영 마지막 날 이 씨는 추 씨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너무 친해졌다. 무덤까지 갖고 갈 비밀을 나눴다." 추 씨는 "진짜 친언니와 동생같은 관계가 됐다"며 "개인의 상처와 역사의 상처가 만나는 지점이 있었다. 저의 상처도 치유 받는 여정이 됐다"고 했다.
영화에는 폴란드 전 대통령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도 등장한다. 플란드 전 대통령 역시 전쟁 고아들을 추억한다. 그의 어머니는 한국전쟁 고아들을 가르쳤던 교사였고, 대통령은 어릴 적 한국전쟁 고아들과 함께 춤을 추고 노래하며 함께 놀았던 기억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추 씨는 영화가 만들어진 것을 폴란드 대통령 덕분이라고도 했다. 그가 방한 당시 책을 출판사에 맡기지 않았다면, 추 씨에게 자료가 닿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
그는 당분간 배우로 복귀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천편일률적인 여성 캐릭터가 좀더 실제적이고 다양해지길 꿈꾸는 마음만은 여전하다. 그 마음은 '폴란드로 간 아이들' 속 추 씨와 이 씨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영화 말미 남한 여성과 북한 여성이 나란히 걸어오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마지막으로 추 씨에게 연대란 무엇인가. "저에게 연대란 마음을 나누고, 그 마음이 새로운 창조 그리고 사회를 치유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단순히 행동으로 연결된다고 하면, 부정적인 결과도 포함될 수 있어요. 지금까지 연대는 참 많았잖아요. 단순히 마음을 나눠서 연대했는데 파괴적인 결과가 나온 일도 있었고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갈라진 틈을 메우거나 화해하면서 사회가 치유되고 새로워지는 현상이 이뤄져야 참된 연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