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가 현 수준에서 계속 유지될 경우 금융불균형 확대로 금융안정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게 이주열 한은 총재의 설명이다. 가계부채가 1500조 원을 돌파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데다, 증가세가 여전히 소득증가율을 웃돌고 있다는 점에서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미국 연준(Fed)이 12월에도 금리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를 방치할 경우 한미 기준금리 역전폭은 100bp(1bp=0.01%포인트)까지 벌어진다. 내외금리차 확대에 따른 자금유출 우려를 사전에 방지할 필요성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는 것이다. 우선 가계부채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경기가 꺾이고 있는 시점에서 긴축정책을 펴는 것이 맞느냐는 점은 두고두고 논쟁거리가 될 듯 싶다.
뒷북 인상이라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몇 가지 논란과 과제도 남겼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총재를 비롯한 7명의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은 ‘7명의 현인(賢人)’이라는 옛명성을 되찾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겠다.
반면 외부의 진단은 180도 다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실물지표가 나쁘다는 점에서 인상하는게 맞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달 30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현재와 미래의 경기를 가늠해볼 수 있는 동행 및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10월 현재 각각 98.4와 98.8을 기록했다. 이는 각각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각각 2009년 6월 98.5, 2009년 4월 98.5) 이후 최저치다.
그나마 버팀목인 수출도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11월 수출은 전년동기대비 4.5% 증가하는데 그쳤다. 17개월연속 증가세를 이어왔던 수출은 올 4월 마이너스(-) 증가율(-1.9%)을 기록한 이래 증가와 감소를 반복 중이다.
경제주체들의 경제심리는 더 부진하다. 기업(BSI)과 소비자(CSI) 심리를 종합한 경제심리지수(ESI) 순환변동치는 11월 기준 93.2로 2016년 7월(93.1) 이후 2년4개월만에 가장 낮았다. 이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수준인 1.25%로 인하한 2016년 6월 직후 수준과 같은 셈이다.
시장 분위기도 이같은 부진을 반영하고 있다. 국고채 10년물과 3년물간 금리차이인 장단기 금리차는 한은 금리인상 직후인 지난달 30일 20.9bp까지 축소됐다. 이는 2016년 10월7일(20.5bp) 이후 2년1개월만 최저치다.
이같은 평탄화와 향후 역전가능성은 미국에서도 논쟁중이다. 1960년대 이후 장단기금리차가 역전된 8번 중 7번의 사례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외국계은행의 한 채권시장 참여자는 “다수가 참여하는 채권시장에서 장단기금리차가 축소된다는 점은 향후 경기침체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는 집단지성의 소리없는 아우성”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경기 및 물가 등 거시경제상황과 금융안정상황을 함께 고려하면서 완화정도의 추가 조정여부를 판단해 나갈 계획”이라며 “이 과정에서 이번 기준금리 인상의 효과, 대외 불확실성 요인의 변화가 성장 및 물가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가계부채 증가세 추이 등을 면밀히 점검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상 추가 인상은 신중할 것임을 시사한 셈이다.
실제 이날 금통위에서 조동철 위원과 신인석 위원이 인상에 반대했다. 그만큼 인상에 논란이 많았음을 반증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도 추가 인상에 회의적이다. 금통위 직후 증권사 등 16개 주요기관에서 발표한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12곳에서 내년 동결을 전망했다. 오석태 한국SG증권 본부장(이코노미스트)은 “이번 금통위에서 매파적(통화긴축적) 입장을 일부 보여줬지만 놀라울 일은 아니다”며 “한은 조차도 성장과 인플레 전망이 추가 인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인정한 만큼 내년에 금리인상이 없을 것이라는 기존 전망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총재가 싫어하는 단어는 ‘명확’..한은 내에서도 멈블링(mumbling) 평가 =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제롬 파월 미국 연준(Fed) 의장은 뉴욕 이코노믹클럽 연설에서 “정책금리가 중립금리 수준 바로 밑에(just below) 있다”고 밝혔다. 한달만에 입장이 바뀌긴 했지만 최근 중앙은행 총재들의 의사소통(커뮤니케이션)은 간결하고 명확해지는 분위기다.
반면 금통위가 있었던 전달 30일 채권시장에서는 주요 거래수단인 케이본드(K·BOND) 메신저를 통해 이주열 총재와 관련해 ‘받은글’이라는 소재불명의 글이 나돌았다. 내용인즉슨 ‘이주열 한은총재가 - 좋아하는 단어 : 조금/ 여러가지/ 불확실/ 어려운/ 면밀히/ 신중히/ 종합적으로/ 사실상/ 조심스럽다, - 싫어하는 단어 : 명확’이었다.
이와 관련해 채권시장의 한 참여자는 “세상 모든게 정확하고 답을 낼 수 없는 것 투성이다. 그래서 더 고민하고 혜안을 제시해 달라고 많은 연봉을 주고 한은 총재를 두는 것 아닌가”라며 “이런식이면 금통위 횟수를 줄인 것도 노출되기 싫고 일하기 싫은 모습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횟수가 줄어든 만큼 알찬 금통위가 됐으면 좋겠는데 항상 알맹이는 없다”고 일갈했다.
이같은 분위기는 한은 내부에서도 나온다. 한 관계자는 “최근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들의 의사소통은 간결해지는 추세다. 반면 이 총재의 멈블링(mumbling·중얼중얼)은 의사소통을 어렵게 하고, 한은의 평판을 낮추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임 김중수 총재도 그 자신이 “컨빅싱(convincing·설득)시키지 못할 경우 컨퓨징(confusing·혼란)시켜야 한다”고 말해 비판을 자초한 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