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법무부, 경찰청 등 관계부처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합동 브리핑을 열고 '가정폭력 방지대책'을 발표했다. 지난 22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서 김모 씨가 이혼한 전 부인을 스토킹 끝에 살해한 가정폭력 사건을 계기로 관계부처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자 지원책을 개선하는 방안을 논의해 왔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따르면 국회에 계류 중인 가정폭력 관련 대책 법안은 모두 17건이다.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이 2016년 8월 발의한 가정폭력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은 같은해 법사위 소위원회에 회부된 후 현재까지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22일 정춘숙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도 지난 5월에야 법사위 소위에 회부됐다.
계류된 개정안 중 상당수가 피해자 안전을 위해 가해자를 격리 또는 즉시 체포하는 등을 담고 있다. 김 의원의 발의안은 가정폭력 피해자나 가족 중 미성년자가 포함돼 있으면 가해자 등을 피해자가 주거하는 곳으로부터 퇴거하도록 한다. 정 의원은 가정폭력도 형사범위로 인정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밖에도 가정폭력 가해자에게 음주 등을 이유로 한 심신미약 감형을 적용하지 않는 내용(이원욱 의원안)이나 가해자가 피해자 거처에 들어가 폭력을 저지르면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형법상 주거침입죄·퇴거불응죄 등을 적용하는 내용(남인순 의원안), 가정폭력 초동 수사에서 가해자를 의무 체포하는 내용(이찬열 의원안) 등이 있다.
김현원 여가부 권익보호과 과장은 기자회견 이후 기자들과 만나 "지난해 가정폭력 방지 처벌법이 상정되고 논의됐지만, 정부 입장이 정리되지 않아 시간이 걸렸다"며 "정부 대책이 나온 만큼 국회 법사위에서 계류 중인 가정폭력 관련 대책 법안을 심의할 것이고, (개정안) 입법이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번 대책은 의원들이 내놓은 개정안의 내용과 상당 부분 유사하다. 대책안에는 △ 경찰관은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즉시 격리 △ 폭력행위 제지, 가정폭력 행위자·피해자 분리 등으로 구성된 가정폭력처벌법 응급조치 유형에 '현행범 체포' 추가 △ 접근금지는 거주지와 직장 등 특정 장소에서 피해자 또는 가정구성원 등 특정 사람 중심으로 변경 △ 사건 현장에서 경찰이 반드시 확인해야 할 범죄유형별·단계별 가정폭력 사건 처리 지침을 마련 △ 재범위험성 조사표 개선 △ 상습·흉기사범 등 중대 가정파탄사범에 대해 원칙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가정폭력 정도가 심하고 재범 우려가 높은 경우 검사가 가정폭력 사건을 상담 조건으로 기소유예하는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제도 대상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황희석 법무부 인권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형사소송법에 있는 현행범 체포 요건을 가정폭력처벌법에 도입, 현장에서 가해자를 체포할 수 있게 명시하겠다"고 했다.
다만 정부가 생각하는 대책이 그대로 의원 입법에 반영됐다고 볼 수 없는 지점도 있다. 김 과장은 "법무부가 입장을 정해서 새로운 정부안을 낼 것인지 이런 대책이 발표됐다고 (의원 입법이) 개별적으로 나올 것인지 기다려 봐야 한다"면서도 "국회 상임위원회의 결정에는 해당 부처의 의견이 중요한데, 이번 대책에는 법무부의 입장이 반영됐다. 법사위와 법무부가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