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은 되고 방탄소년단(BTS)은 안되는 것은 뭘까. 병역특례다. 그 배경은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2년 독일 뮌헨올림픽 당시, 남한은 체제경쟁 대상이던 북한에 충격적 참패를 당한다. 이에 당시 박정희 정권은 '병역의무 특례 규제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국위 선양 및 문화 창달에 기여한 예술·체육 특기자'에게 병역특례 혜택을 주기로 한다. 즉, 국위 선양을 한 개인에게 국가가 제공하는 보답이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양정모 선수가 첫 병역특례 수혜자로 기록됐다. 이후 전두환 정권은 88서울올림픽 흥행을 위해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에서 3위 이내 입상자로 병역특례 범위를 확대했다. 시간이 흘러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 입상자가 점점 늘어나자, 1990년 병역특례 대상은 올림픽 3위 이상 또는 아시안게임 1위 입상자로 축소됐다. 현재는 △올림픽 3위 이상 입상자 △아시안게임 1위 입상자 △국제예술경연대회 2위 이상 입상자 △국제대회가 없는 분야의 국내예술경연대회 1위 입상자 등이 병역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손흥민과 BTS 간 차이는 여기서 발생한다. 손흥민은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1위에 올라 병역특례 대상자가 됐다. 반면, BTS는 병역법이 명시하지 않은 대회인 빌보드 차트 1위이기 때문에 병역특례 대상자가 아니다. 이에 대해 BTS 팬들은 형행 병역법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며 "한국인 최초로 BTS가 오른 빌보트 차트 1위의 가치는 올림픽 금메달과 같다"면서 "병역특례 대상에 대중예술인을 넣어달라"는 국민 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병역특례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면서 국민 여론 또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올해 9월 여론조사 기업 리얼미터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병역특례 대상자는 확대하고, 수혜자는 축소해야 한다"는 응답이 28.6%로 가장 높았다. 뒤이어 "제도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23.8%, "대상자와 수혜자를 모두 확대해야 한다"는 응답은 13.3%로 나타났다. 국민 절반 이상이 병역특례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는 것이다. 반면, "현행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21.4%였다.
병역특례는 분단 상황에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성별, 연령별로 첨예한 의견 대립이 일어 나고 있는 사안이다. 이에 본지 기자 2명이 국민의 관점에서 병역특례에 대한 생각을 얘기해봤다.
◇"나한테는 BTS가 조성진인데?"…'밥 딜런' 노벨문학상 수상이 주는 메시지
김정웅 기자(이하 김): BTS 병역특례 관련 청원을 보고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조성진이었어. 2015년 당시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 우승을 차지한 피아니스트 말이야. 당시 언론에서 하도 떠들썩하게 보도하는 바람에 클래식의 'ㅋ'도 모르는 나도 쇼팽 피아노 협주곡을 들어볼 정도였지.
나경연 기자(이하 나): 선배가 무슨 말 할지 감이 와요. '손흥민은 되고 BTS는 안되는 것'의 논의에서 '조성진은 되고 BTS는 안되는 것'으로 대화가 뻗어 나갈 것 같아요. 조성진은 과거 2009년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하면서 이미 병역특례 혜택을 받았더라고요.
김: 물론 나도 그렇게 권위 있는 콩쿠르 대회에서 그가 1등을 한 것은 같은 한국인으로서 매우 자랑스러워. 그런데 BTS의 빌보드 차트 1위도 이에 못지않게 엄청 감동적이었거든. 훌륭한 성과를 보여줬음에도 단지 대중음악이란 이유로 병역특례 대상에서조차 제외된다는 게 공정하지 못한 것 같더라고.
나: 그럼 선배한테는 BTS가 조성진이랑 같은 급이라고 봐도 되겠네요.
김: 응. 사실 대중들에게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클래식보다는 대중가요잖아. 더 많은 사람이 누리고 즐기는 대중가요가 클래식에 비해 낮은 수준으로 치부되고,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억울한 마음도 들더라고. 둘 다 예술 분야에 속해 음악이란 매개체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들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것은 똑같은데 대중가요는 불공정한 대접을 받는 것 같단 말이지.
나: 선배 말이 맞아요. 사람들의 무의식중에 클래식을 더 우러러보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대중문화의 영향력은 클래식에 비할 바가 아닌데 말이죠. 예를 들면, BTS의 앨범 메시지인 '러브 유어셀프'는 청소년들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데요. 그래서 국민 여론도 병역특례 대상자는 확대하되, 수혜자는 축소하자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요. 대상자에 대중문화 종사자도 넣자는 것이죠.
김: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하는 바야.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생각해봐. 밥 딜런의 수상에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그의 노래가 지닌 영향력이었어. 밥 딜런은 베트남전에 참전해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미국 병사들의 고뇌를 노래했어. 9.11 테러 당시 미숙했던 국가를 비난하고 가족을 잃은 국민을 위로하기도 했지. 그의 노래가 지닌 힘이 문학의 경계를 깨버린 거야.
나: 저도 생각나요. 밥 딜런 수상 이후 문학의 범주에 관한 토론으로 전 세계가 뜨거웠죠. 하지만 문학의 범위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라고 규정하는 순간 문학은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는 것 같아요. 예술도 마찬가지죠. 클래식만 예술이라고 한정하고, 대중가요는 일시적으로 즐기는 오락으로 치부해버린다면 대중문화의 발전은 멈출 것 같아요.
김: 나도 동의해. 그런데 얘기가 약간 산으로 가고 있는 것 같지?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조성진은 국제대회 우승자라고 병역특례 혜택을 받고, BTS는 빌보드 차트 우승자라고 혜택을 못 받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거야. 병역특례 대상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봐.
◇"대상자 확대하되 제도는 유지" vs "확대하면 결국 군대 갈 사람 없어"
나: 그럼 선배는 병역특례 대상자를 확대하되, 병역특례 제도 자체는 유지하자는 견해이신 거죠?
김: 그렇지. 제도 자체는 필요하다고 생각해. 병역특례 제도 덕분에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가 많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봐. 야구에서는 박찬호와 류현진, 축구에서는 박지성과 손흥민. 만약 이들이 기량을 최고로 끌어올릴 시기에 군대에 가서 몸이 굳어버렸다면 지금의 성과를 이룰 수 있었을까? 무용수나 피아니스트도 비슷하겠지. 조성진도 병역특례 혜택을 받았기에 하마마쓰 콩쿠르에 이어 쇼팽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을 거야. 2년 동안 신체가 굳어버리게 되면 전성기 당시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겠지.
나: 물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해요. 하지만 병역특례 대상자를 점점 확대하다 보면 그 범위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 같아요. 지금은 예술·체육인이지만 나중에는 요리사나 정비공까지로 대상이 넓어질 수 있을걸요? 물론 절대 이 직업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에요. 이런 식으로 거의 모든 직업으로 병역특례 대상자가 확대되면서, 나중에는 군대에 갈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차라리 병역특례 제도를 폐지하면 모든 국민이 공평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 음. 나는 어떤 제도가 가지고 있는 부작용 때문에 시행 자체를 미루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모든 제도나 기존 제도의 변화에는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야. 하지만 그 부작용이 두려워 아무것도 시행하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절대 발전할 수 없을걸. 네가 지적한 문제도 일리가 있지만, 그건 차후의 문제야. 병역특례 대상자를 확대해가면서 생기게 될 문제는 시행과 함께 해결해나가는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봐.
나: 그러면 좀 급진적이긴 하지만 모병제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병역특례 대상자가 너무 많아져서 군대 갈 사람이 없어진다면, 해결법은 모병제가 아닐까요?
김: 모병제도 해결책이 될 수 있겠지. 지금 우리나라도 초고령화 사회에 들어섰잖아. 올해 합계 출산율도 1명 미만이고. 더는 징병제로 군대를 유지할 수 없는 시대가 온 거지.
◇양심적 병역거부자 논란…'여호와의 증인' 가입 문의 폭주?
나: 모병제까지 대화가 확대되니 최근 논쟁거리가 됐던 양심적 병역거부자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무죄를 인정하고, 국가가 이들에게 대체 복무를 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죠. 일각에서는 이런 판결이 모병제로 가는 순서라고 해석하고 있어요.
김: 이것도 병역특례 대상자 확대와 결이 같다고 볼 수 있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한두 명씩 인정해주면, 결국 모든 사람이 양심적 병역 거부를 하면서 군대에 가지 않는 상황도 올 수 있겠지. 물론, 자신의 신념에 따른 문제이긴 하지만 나는 극단적 상황을 가정해 본 거야.
나: 극단적 상황이 아니라 현실로 이뤄질 수 있다고 봐요. 실제로 해당 판결 이후 포털사이트에 '여호와의 증인' 가입 방법, '여호와의 증인 신도 되는 법' 등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으니까요. 선배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 내 생각은 대법원 판결과 일치해.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국가는 그들이 종교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제도로서 보장해줘야 한다고 봐. 신도들이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군대 가서 총은 못 들겠다고 하는데, 국가가 그들의 신념을 보호해 주는 것이 의무 아닐까?
나: 오, 선배. 굉장히 열린 마음을 갖고 계시네요. 제 주변에 일부 남성들은 "그럼 군대에 다녀온 우리는 양심이 없는 사람이냐"면서 일부 신도들에게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것에 반대하던데요. 대체복무 장소나 업무 종류와 상관없이 실제 군 복무를 대체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은 없다면서요. 선배…. 조심스럽지만, 현역 맞으시죠?
김: 무슨 소리야. 나 23사단에서 엄청 빡세게 굴렀다고. 단지 그들의 신념을 존중할 뿐이야. 순수한 의도를 의심받으니 기분 나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