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일본, 독일을 포함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등 미국을 제외한 주요국 경제는 최근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거나 급격한 둔화를 경험하고 있다. 미국 경제도 내년 그동안 성장을 이끌었던 원동력들이 사라지면서 활력을 잃을 것이라는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20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이 개최한 ‘제8차 KIEP-IMF 공동콘퍼런스’에서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이 3.5%로, 올해의 3.7%에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성배 KIEP 국제거시금융실장은 “내년 세계 경제의 수요와 생산, 고용이 선순환하는 힘이 점차 둔화할 것”이라며 “선진국은 물론 신흥국도 미·중 통상분쟁의 장기화와 미국 금리 인상, 고유가 등의 영향으로 성장세가 둔화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나온 주요국 거시경제 지표가 일제히 부진하면서 세계 경기둔화를 확인시켰다. 세계 3,4위 경제국인 일본과 독일의 지난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모두 마이너스에 빠졌다. 같은 기간 유로존 성장률은 0.2%로, 2014년 2분기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중국은 무역 전쟁과 당국의 부채 감축 정책 추진 여파로 GDP 성장률이 6.5%로, 9년 반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동안 글로벌 증시 버팀목 역할을 했던 뉴욕증시는 올가을 대형 기술주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떨어지고 미국 금리 상승에 대한 우려에 휩싸이면서 침체에 빠졌다.
뉴욕증시는 전날 IT 대장주들이 일제히 급락하면서 또 한 차례의 혼란을 연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일 기준 뉴욕증시 다우지수가 최근 1개월간 1.7%, S&P500지수는 2.8% 각각 하락하고 나스닥지수는 5.6% 급락하면서 올해 상승분을 대부분 반납했다고 분석했다.
애플은 핵심 제품인 아이폰 수요 둔화 징후에 휘청거리고 있고 페이스북은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와 2인자인 셰릴 샌드버그 최고운영책임자(COO)의 갈등이 노출되는 등 대형 기술주들이 각자의 악재를 안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 한복판에 놓이게 됐다. 중국 반독점 당국은 전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가격 담합 조사에 중대한 진전 있다고 밝혔다. 이 여파로 마이크론 주가는 6.6% 급락했다.
리서치 업체 데이터트랙의 니콜라스 콜라스 공동 설립자는 “무역 전쟁이 시장에 충격을 주고 있다. 시장이 충격을 받으면 투자자들은 위험자산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라며 “또 기술 부문도 자체적인 이슈를 안고 있다. 기술기업들의 사업모델에 대한 논란이 가속화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미국 기업들은 금리 상승과 강달러로 내년 실적 전망이 매우 불투명하다.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은 지난 3분기 S&P500 기업들의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6% 증가해 2010년 이후 가장 큰 증가폭을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애널리스트들은 내년 기업 순익 증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질 것이라고 비관하고 있다.
시장의 불안이 고조되면서 이른바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IX)는 전날 11% 폭등한 20.10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