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만 그런 게 아니에요. 한국의 대법원은 항상 그래왔어요. 양 전 원장 입장에서 보면, 과거에 해왔던 것처럼 해왔을 뿐인데 뭘 잘못했느냐,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사롭지 않아 보였던 사법 농단 사태는 예사였다. 판사 출신으로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낸 신평(62ㆍ사법연수원 13기) 변호사가 걸어온 길은 이를 증명한다. 그는 1993년 돈 봉투가 오가는 부패한 사법부 현실을 지적한 후 그해 8월 현행 헌법 시행 후 최초로 법관 재임명에서 탈락했다. 로스쿨 교수로 자리를 옮긴 후인 2014년 그는 동료 교수가 공무 출장 중 성매매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했고 1심에서 무죄, 2심에서 유죄 판단을 받고 상고했다. 대법원은 1년 8개월 동안 사건 처리를 미루다 ‘상고인의 주장은 이유 없다’는 한마디 말로 유죄 판결을 확정했다. 신 변호사는 “진실을 무력하게 만든 오만한 법원”을 고백하고자 한다. 그의 저서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는 명예훼손 피의자이자 사법피해자가 된 그의 재판 투쟁 기록을 담고 있다.
신 변호사는 10일 “공정한 재판을 바라는 저의 주장은 어쩌면 제가 죽고 나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낙담해왔는데,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책을 낸 소감을 밝혔다. 그는 책에서 ‘재판의 독립’을 과도하게 주장하는 것이 곧 ‘사법 적폐’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신 변호사는 “어느 판사가 어떤 착오로 부정한 판결을 했다고 해보자.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당사자가 법원 행정처에 진정을 넣어도 ‘이건 사법독립에 관한 것으로 대법원이 관여할 수 없으니 이해해달라’는 답변이 돌아올 거다. 사법부 독립을 강조하면 공정한 재판은 이뤄질 수 없다. 지금까지 드러난 잘못된 판결들은 사법부 독립이라는 주장 뒤에 숨어왔다”며 ‘사법부 독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 변호사는 작금의 사법 농단 사태에 대한 일침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현재 법관들이 영장 기각으로 사법 농단 수사를 가로막고 있다. 이것이 불순한 조직이기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면 해당 법관의 직무배제 나아가 징계 등 법적 책임까지 물어야 한다”며 “이것이 바로 ‘사법의 책임’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유죄 판결 이후 대학을 떠난 신 변호사는 사법 피해자들을 위해 남은 생을 보내겠다고 밝혔다. 그는 “힘없는 사람들, 억울한 사람들을 돕는 공익 로펌을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