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박정희식 국가주도주의적 모델이 ‘아버지형 정부’라면 지금은 ‘어머니형 정부’가 좋은 정부라고 생각합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27일 국회 비대위원장실에서 가진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국가의 역할에 대한 자신의 철학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6·13 지방선거 참패 후폭풍으로 벼랑끝에 몰린 자유한국당이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돌입한지 열흘 째를 맞은 날이었다.
김 위원장의 어깨에는 좁게는 한국당의 혁신, 넓게는 대한민국 보수의 재건이라는 무거운 역할이 걸려 있다. 국가의 역할과 한국당의 방향을 중심으로 대해 김 위원장이 갖고 있는 생각을 물었다. 그는 자신이 꿈꾸는 이상을 ‘국가주의’와 대립되는 개념의 ‘자율주의’로 정리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고 설명했다.
“먹방 규제하겠다는 정부는 국가주의…내 철학은 ‘신자유주의’와 다르다”
공식 행보를 시작한 이후 줄곧 ‘보수의 가치 재정립’을 최우선 과제로 강조해 왔던 김 위원장은 우선 전통적 가족의 비유를 들어 자신이 생각하는 국가관에 대해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개인적으로는 밖에 나가서 열심히 친구들과 뛰어 놀도록 하고 다쳐서 돌아오면 치료해 주고 보듬고 ‘기죽지 말라’고 하는 ‘어머니형 정부’가 좋은 정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공식 행보를 시작한 이후 김 위원장이 현 정부를 ‘국가주의’라고 비판하며, 대립되는 개념으로, ‘시장주의’를 강조해 왔던 것과 궤를 함께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국가가 학교에 커피자판기를 설치하지 못하게 하거나, 국민들 뱃살이 자꾸 나온다며 ‘먹방’을 규제하겠다는 것이 국가주의적 발상”이라면서 “이러다 복장도 규제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다만 김 위원장은 이같은 자신의 철학이 최대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와도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국가의 보충적 역할은 결코 작지 않다”면서 “시장에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반드시 기회와 소득의 불균형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시장에서 패배한 사람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보듬어 주는 것은 국가의 몫”이라고 부연했다.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하자 김 위원장은 “시장은 자유롭게 하고 국가는 조세정책으로 그걸 메워주라는 것”이라며 스웨덴의 사례를 언급했다. 이 과정에서 조세정책에 대한 김 위원장의 생각도 일부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스웨덴의 시장소득 지니계수는 0.4가 넘고 우리는 0.34밖에 되지 않지만 스웨덴은 국가가 조세로 돈을 거둬들여 재분배를 하는 여러 사회정책을 쓴다”라며 “이 과정에서 스웨덴의 지니계수는 0.27로 떨어지지만 우리는 조세를 통해 소득재분배를 한 이후에도 지니계수가 0.34에서 0.31로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노조와 깊이 연관된 문재인정부, 산업구조조정에 한계 있다”
국가와 시장에 대한 김 위원장의 설명은 자연스럽게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의견을 묻자 김 위원장은 “성장이론이 없다”라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원래 진보이론이 성장과 관계 없는 게 아니다. 진보적이라고 하는 케인즈의 이론만 하더라도 소득을 올려 내수를 살려 성장을 연속되기 하자는 것”이라면서 “성장하지 않는 경제는 ‘제로섬 게임이 되기 때문에 항상 춥고 배고픈 사람이 더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관련해 김 위원장은 “성장이론이 없기 때문에 구태여 국제노동기구(ILO)의 ’임금주도성장‘을 가져다 쓰는 것”이라면서 “밖에서 가져온 이론이 우리 현실과 맞겠느냐”고 혹평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의 자영업자 수는 6~7%, 일본은 12~13%,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이 15~16%인데 우리는 26%~33%”라면서 “우리에게 맞지 않는 이론이라 자영업자가 더 힘들어지는 결과가 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 위원장은 최근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대체하는 개념으로 산업정책을 포함한 ’포용성장‘을 제시한 것과 관련해서도 “원래 있던 ’따뜻한 자본주의‘니 ’동반성장‘이니 하는 것과 비슷비슷한 말”이라면서 “결국 노동조합을 건드리는 산업구조조정과 미시산업정책을 해야 하는데, 현 정부는 노동조합과 깊이 연관이 돼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그는 대기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기조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 위원장은 “대기업과 관련해 정부가 가장 신경써야 할 문제는 공정거래와 갑을관계”라면서 “(기업문화가) 더 진전돼야 하겠지만 전체 기업을 ’천민자본주의‘로 인식하고 (정부가) 경제력 집중 문제나 지배구조 문제에서까지 마음대로 칼을 가져다 대는 것은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보수냐 진보냐 질문에 답해본 적 없다…한국에는 두 이념이 혼재”
한국당의 대표실로 쓰이던 비대위원장실에는 홍준표 전 대표가 걸어둔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전 대통령 세 명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자신이 설명한 맥락에서 ’국가주의‘에 해당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김 위원장은 “공과 과를 다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평가할 부분은 외국인 직접투자를 막고 차관을 유치했다는 점”이라면서 “남미처럼 외국인의 직접투자를 유치했다면 끔찍한 모습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참여정부의 대통령 정책실장을 지냈고 부총리 후보자로 지명되기도 했다. 반면, 한국당의 비대위원장도 맡게 됐다. 우리 정치권에서 찾기 어려운 이력이다. 김 위원장이 자신을 ’진보‘와 ’보수‘ 중 어느 쪽으로 여기는지 궁금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보수냐 진보냐 질문에 한 번도 대답 못 해봤다”며 “한국에는 진보와 보수가 혼재돼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보수에서도 박정희 성공신화와 국가가 일사분란하게 이끄는 것을 꿈꾸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작은정부와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분들이 양 극단에 있다”면서 “진보진영 내에도 지금 정부처럼 뭐든 국가권력을 앞세워 개혁하려는 사람과 공동체주의를 지향하는 정반대의 세력이 존재한다. 그만큼 진보도 보수도 (가치가) 혼란스럽다”고 부연했다.
답변 곳곳서 당론과 시각차…“같으면 왜 불렀겠나, 치열하게 토론해야”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김 위원장의 답변에서도 곳곳에서는 전통적인 한국당의 당론과 다른 부분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례로 부동산정책과 관련해 김 위원장은 “거래세를 낮추고 보유세를 인상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고, 경제정책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성장이 분배를 보장하지 않는다”라며 공급정책 중심의 목소리를 내는 소속 의원들과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조세정책에 대한 지론 역시 한국당 의원들이 동의하기 어려워 보이는 측면이 있었다.
당내 의견을 모아야 할 비대위원장으로서 부각되는 것을 꺼릴 수도 있는 부분이었지만, 김 위원장은 “똑같은 시각을 가졌으면 굳이 날 부를 이유가 없었지 않느냐”며 질문을 피해 가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당 내에서) 죽기살기로 토론하고 논쟁해서 (당 구성원) 전부가 가치와 철학을 내재화해야 한다”며 “일방적으로 강요할수 없고 내가 가자고 해서 될일도 아니다.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고 같이 이야기 해야 한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북한에 대해 묻는 것으로 인터뷰를 끝맺었다. 북한에 대한 입장은 우리 정치현실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돼 왔지만, 김 위원장은 지난 열흘간의 행보에서 한 번도 공식적으로 북한을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는 “사실 이야기 안 하려고 했다”면서도 “평화라는 가치를 거부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국방력을 튼튼히 하고 북한에 압박을 가하는 트랙이 병행돼야 한다”면서 “(현 정부가) 이것을 신경쓰지 않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