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노동시간을 줄여 저녁이 있는 삶 ‘워라밸(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을 가능하게 만들고, 줄인 노동시간만큼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주 52시간의 핵심 취지”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기업들은 줄어드는 노동시간으로 인한 부담을 호소했고, 노동자들은 소득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저녁이 있는 삶’이지만, ‘저녁밥은 없는 삶’이 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우리 사회는 이 같은 고민을 이미 한 차례 겪었다. 2004년 주 5일제 근무제를 도입하면서다. 당시에도 기업들은 인건비 상승과 생산성 하락 등을 우려하며 불만을 쏟아냈고, 노조는 임금이 줄지 않는 주 5일제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 5일제가 시행될 때 국가 경제에 큰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경제성장률은 2004년 4.9%, 2005년 3.9%로 주 6일제를 시행하던 2003년의 2.3%보다 높았다.
다양한 계층의 사회 구성원들이 겪을 수 있는 실질적인 어려움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어떤 제도도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이제 막 시작한 주 52시간 근무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노동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혼란이 있더라도 언젠가는 주 52시간 근무제도 안착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시간 단축의 문제는 치밀한 사회적인 합의 과정과 준비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시행이 코앞에 닥쳐서야 애매모호한 가이드라인과 보완 대책을 내놨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시간 단축 가이드북을 시행 3주 전에야 발표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법원 판례와 행정해석 등을 종합 정리한 수준이어서 현장의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유연근무제 매뉴얼은 시행 닷새 전에 내놔 노동시간 단축 대비에 늦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달 20일에는 당·정·청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6개월 계도 기간’ 건의를 수용했다. 주 52시간제 시행을 열흘 앞두고 정부가 준비 부족을 시인한 셈이다. 고용부는 ‘시정 기간을 최대한 6개월 부여한다는 의미’라고 했지만, 사실상의 처벌 유예다. 현재 논의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포괄임금제 등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촘촘한 대안을 마련해 시행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제라도 남은 6개월을 어떻게 잘 활용해 혼란을 최소화하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노력해야 할 때다. 아울러 주 52시간 근무 취지를 살리다 보니 수당을 받지 못하고 실제로 일할 수밖에 없는 ‘공짜노동’ 문제도 해결해야 할 것이다.
6개월의 계도기간을 최대한 활용해 근본적인 대책을 만들어 300인 이상 사업장이 성공적으로 정착해 2020년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도 ‘저녁밥’과 ‘여유’가 있는 삶이 보장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