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의 ‘무역확장법 232조’ 여파가 구체화되는 가운데, 중국은 물론 일본과 유럽, 러시아 등이 보복관세로 맞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관세부과의 부당함’을 포함한 의견서 제출에 머물고 있어 미온적 대응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29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가 수입차와 차부품을 대상으로 추진 중인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에 대해 우리 정부와 무역단체는 전날 미국 상무부에 공식 의견서를 제출했다.
무역협회는 “의견서를 통해 한국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미국산 자동차의 유망 잠재 수출시장이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미국산 자동차에 무관세를 적용하고 있다”면서 “무역확장법 232조 조치가 취해지더라도 한국은 조치대상에서 면제돼야 함”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앞서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역시 세계가스총회(WGC)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현지 정‧재계 인사를 만나 ‘수입차 관세 부과’에 대한 우리 정부의 우려를 전달했다. 상무부에 관세 부과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표명하고 내달 관련 공청회에 참석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반면,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주요 국가들이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정면 대결에 나선 중국은 둘째로 쳐도, 일본과 유럽, 러시아 등은 ‘국가 대 국가’로서의 맞대응 방안을 속속 내놓고 있다. 글로벌 초강대국 지위를 이용한 ‘미국’의 일방적 무역정책에 공격적으로 맞서겠다는 의미다. 이들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는 물론, 미국의 관세 정책에 맞서 보복관세를 확정하는 등 공격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어 우리 정부와 온도 차이를 보인다.
먼저 트럼프 행정부의 철강관세 직격탄을 맞은 EU는 미국이 무역협정을 위반했다며 WTO에 제소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EU는 제소 결과 ‘협정위반’이 결정될 경우 미국산 트럭에 대한 ‘세이프가드’ 형태의 보복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다.
지난 20일에는 WTO의 제소 결과와 관계없이 보복 관세를 확정하기도 했다. 미국산 모터사이클에 25%의 관세 부과를 결정한 것. ‘할리-데이비슨’에게 유럽은 두 번째로 큰 시장이다. 결국 미국의 자존심과 같은 할리-데이비슨은 미국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할리의 공장 이전과 관련해 “종말을 보게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본은 표면적으로 침묵하지만 물밑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임이는 중이다. 경제 분야에서 미국에 대한 속국중의가 강하고, 정치적으로도 우호관계를 지녔지만 이익 앞에서는 주저하지 않는 모양새다. 일본은 러시아, 터키 등과 함께 미국의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고율관세 부과에 대해 보복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구체적으로 관세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미국이 부과한 관세와 동일한 규모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앞서 미국의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 탓에 일본과 러시아, 터키는 각각 4억4000만 달러, 5억3000만 달러, 2억6000만 달러의 연간 손실(2017년 기준)이 예상된다.
일본과 러시아는 아직 구체적인 보복관세 품목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터키는 자동차와 철강 제품 등이 포함된 22개의 품목을 확정하고 미국에 보복관세로 맞서고 있다. 일본의 보복관세 경고는 WTO에 제소를 위해 제출된 문서를 통해 공개됐다.
캐나다 역시 미국의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부과 대응해 내달 1일부터 철강 등 128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다. 앞서 미국은 지난 3월에 철강 및 알루미늄 고율관세 부과를 발표했고, 캐나다는 협상 등을 이유로 5월 말까지 일시적으로 면제했지만 6월 1일부터 관세를 적용 중이다.
미국 상공회의소 역시 트럼프 행정부가 자동차 수입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하며 “자동차 수입관세 부과는 트럼프가 보호하겠다는 미국 산업에 오히려 큰 충격을 줄 것이고 보복관세 등으로 국제 무역분쟁을 발생시킬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미국발 관세 전쟁 속에서 글로벌 주요 국가가 적극적인 방어와 보복관세, WTO 제소, 세이프 가드 조치 등 갖가지 강공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와 무역단체의 대응은 ‘의견서 제출’을 포함한 미온적 대응에 머물고 있어 보다 적극적인 대응과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자동차 산업에서는 우리보다 규모가 뒤쳐진 인도와 터키, 멕시코 등이 적극적인 보복관세를 앞세운 것과 대조적이라는 반응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근 남북경협과 북미정상회담 등 정치외교적 주요 현안이 진행되는 가운데 자칫 무역분야의 분쟁이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국산차의 경우 미국 현지에서 판매 부진을 겪고 있는 가운데 25% 관세가 현실화되면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한다. 예컨대 현대차는 올 들어 미국 시장에서의 판매 감소와 리콜로 인한 비용증가 등에 발목이 잡힌 상태다. 현대차의 올해 1~5월 미국시장 판매량은 27만994대로 지난해 같은기간 29만1853대보다 7.1% 감소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한 국가를 대표하는 통상분야 장관이 다른 국가 의회 관계자들을 만나 입장을 전달하는 것 역시 적지않은 효과와 상징적 의미를 지닌 것”이라며 “단순한 입장 전달 차원을 넘어서 효과적인 ‘아웃리치(대외 접촉)’의 의미로 봐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