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 ‘노사관계 악화’, 근로시간 단축의 또다른 ‘그늘’

입력 2018-05-23 11:01 수정 2018-05-2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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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외 수당과 휴일근무 수당으로 빠듯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52시간만 일하라고 하면 최저임금으로 200만 원도 못 받게 됩니다. ” , “중소기업 생산직에 종사하는 가장입니다. 회사에선 미리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벌써 소득이 많이 줄어 생계가 막막해졌습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이 같은 근로시간 단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고 있다. 주52시간 근무제 시행일이 임박하면서 ‘돈 없는, 저녁있는 삶’을 강요받게 된 근로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분위기다. 월급이 줄어든 근로자들의 반발을 감당해야 할 기업들은 당장 임금협상에 들어가기가 두렵다. 이미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에 이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인건비 부담까지 늘어나게 된 상황에서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력이 줄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지난달 국내 377개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견조사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경영 애로사항으로 ‘노사관계 악화’가 등장했다. 중견기업계 관계자는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 줄어든 임금 보전에 대한 노조의 요구가 늘어날 것”이라며 “내년 임금 및 단체협상 시 노사 간 마찰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구조적 구인난에 대한 인력공급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채 근로시간 단축 압박이 거세지면서 각종 편법이 늘어나게 되는 점도 노사 갈등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가장 먼저 근로시간 단축 포화를 맞는 300인 이상 기업들부터 이른바 사업장 쪼개기, 30분 일찍 출근하기, 휴식시간 일부 반납, 퇴근카드 미리 찍기 등 편법을 동원하고 있어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보상 없이 일만 더 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나온다. 한 중소기업인은 “정부가 기업들을 편법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며 “결국 근로자들의 반발만 커지고 중소기업 사장들을 범법자 만드는 꼴밖에 더 되겠나”라며 한탄했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어긴 사업주는 형사처벌에 직면하게 되는 만큼 회사에 불만을 가진 노조나 직원들에게 경영진이 고발·신고당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가정도 충분히 가능하다.

더욱이 정부가 17일 내놓은 ‘노동시간 단축 대책’ 중 일부 방안은 시행 과정에서 노사 간 쟁점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는 사회복지서비스업, 연구개발업, 방송업 등 ‘특례제외 업종’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 활용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특례제외 업종 중에는 집중적인 노동이 필요한 업종이 많은데 주 최대 52시간 노동을 기계적으로 적용할 경우 초래할 수 있는 혼란을 탄력적 근로시간제로 완화할 수 있다. 이에 기업들은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단위 기간을 2주(취업규칙) 또는 3개월(노사합의)에서 선진국과 같은 1년으로 확대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단위 기간을 늘리면 장시간 노동이 다시 일상화될 수 있다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노사 간 갈등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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