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에 역행한다며 논란을 빚어온 ‘보편요금제’가 격론 끝에 규제개혁위원회의 문턱을 넘었다. 정부는 관련 법안을 상반기 중 국회에 제출해 연내 보편요금제 도입을 강행할 방침이다. 정부의 의지가 워낙 확고해 도입이 유력하다. 하지만 찬반 논리가 팽팽한 데다 법안을 처리해야 하는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가 대표적인 불량 상임위임을 감안하면 도입 과정에서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규제개혁위원회는 11일 보편요금제 도입을 통과시켰다. 지난달 1차 회의 때와 마찬가지로 찬성과 반대 측 논리과 명확히 갈리면서 평행선을 달렸지만, 표결을 강행해 재적 위원 24명 중 13명이 찬성해 가까스로 과반 찬성을 넘겼다. 7시간이나 회의가 진행될 만큼 위원들 간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렸는데 표결을 강행한 것은 이례적이란 평가다.
보편요금제는 이동통신 지배적 사업자인(업계 1위) SK텔레콤에 현재 3만 원대 요금제에서 제공되는 통신 서비스(데이터 1GB, 음성통화 200분 제공)를 월 2만 원대에 요금제를 출시토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1위 사업자가 이를 도입하면 경쟁사인 KT와 LG유플러스도 저가 요금제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어 전체적으로 통신비를 인하하겠다는 취지다.
규개위를 통과한 보편요금제는 앞으로 법제처 심사 후 차관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이송되는 절차를 밟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내달 국무회의 의결까지 마치고 곧바로 국회에 보편요금제를 골자로 하는 전기통신사업법개정(안)을 제출해 상반기 내에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보편요금제가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인 데다 최근 범정부 차원의 ‘집중관리 갈등과제’에 포함되면서 최종 도입을 위해 속도전에 돌입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업계의 반발이 여전히 큰 데다 과방위의 법안 처리 과정에서 진통을 예상하는 시각도 있다. 이통 3사는 보편요금제 도입은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으로 시장 경쟁을 저촉해 오히려 소비자 부담을 증가할 것이라면서 크게 반발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선택약정 할인 확대, 취약계층 요금감면 등 가계통신비 부담 경감을 위한 통신사의 역할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며 “각종 통신비 인하로 인해 실적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정부의 시장 개입으로 인해 소비자 혜택 감소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편요금제의 요금 절감 효과는 2조2000억 원이다. 이 금액은 전부 통신사의 몫이다. 현재 이통 3사의 연간 영업이익은 약 3조5000억 원인 점을 고려하면 연간 손실액은 영업이익의 70%에 달한다. 내년 상반기 상용화를 앞둔 차세대 이동통신망인 5G(5세대 이동통신) 투자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에선 5G는 4G보다 더 촘촘하게 망을 깔아야 해서 투자비용이 4G 대비 2배가량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이통 3사는 LTE 망 구축 등에 투자한 비용을 15조~17조 원으로 추산하는데, 이를 바탕으로 계산해 보면 30조 원(6~7년 기준)까지 치솟는다.
국회 과방위의 과거 법안 처리가 행태가 불량했던 점도 변수다. 전신인 미방위는 2016년 법안처리 0건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남겼다. 이번에도 방송법을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맞설 경우 전기통신사업법 역시 논의가 무기한 연기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