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대규모 무역 보복 패키지를 발표하면서 주요 2개국(G2)인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본격화할 조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지식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대규모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대(對)중국 무역 보복 패키지를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무역 보복의 규모는 중국이 지식재산권을 침해해 미국 기업이 피해를 본 규모를 바탕으로 산출됐다. 미국 기업들이 중국의 지식재산권 탈취로 입은 피해는 작년 기준으로 연 300억 달러(약 32조1450억 원)에 이른다. 미국은 앞서 중국을 겨냥한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고율 관세를 부과해 보호무역 조치를 단행한 데 이어 새로운 강경책을 더한 것이다.
중국도 바로 보복에 착수했다. 중국 상무부는 23일 미국산 돼지고기에 25%, 철강과 과일, 와인 등에 15%의 관세를 각각 부과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중국의 보복 관세는 128개 품목에 해당되며 금액상으로는 30억 달러에 이른다고 미국 CNBC방송은 전했다.
또 중국은 향후 농산물을 중심으로 미국에 추가 보복 조치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수출하는 사탕수수의 75% 이상은 중국으로 향했다. 콩 역시 전체 미국 수출 규모의 50% 이상인 124억 달러가 중국에 팔렸다. 중국의 한 고위 관료는 “미국이 새로운 관세를 중국에 부과하면 중국은 그에 비례하는 정책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달 중국 상무부 관계자들은 미국에서의 농산물 수입을 줄이는 데 대한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방책 마련에 나섰다. 콩의 경우 브라질, 아르헨티나, 폴란드 등이 대안 수입국으로 거론됐다.
최근 몇 주간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과 육류를 대상으로 보복 가능성을 높이자 미국 농민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재너그룹의 브라이언 그로스맨 애널리스트는 “결론적으로 미국 농민은 매우 겁에 질린 상태”라며 “중국의 보복은 농민에게 좋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티모시 스트렛포드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는 “현재 무역 환경은 미국 기업들이 중국 시장의 중요성을 장기적으로 재검토하게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만약 중국이 더는 우리의 중요 사업 파트너가 아니라고 판명되면 우리는 시장을 다양화해야 할 것”이라며 “기업들은 전략 재정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중국은 당근책도 함께 준비 중이다. 보험사와 증권사에 대한 외국인 투자 제한 완화 등 미국을 회유하는 정책이 그 예다. 그러나 미국을 포함한 서구권 정부 관계자들은 중국이 이전에도 비슷한 공약을 내걸었지만, 매번 실효성이 없었다고 회의적인 목소리를 냈다. 예컨대 작년 5월 중국은 비자나 마스터카드 등 미국의 전자결제 기업과 신용평가사의 중국 시장 진출을 허용키로 했지만, 지금까지 이렇다 할 결과물은 없다.
전문가들은 G2 간 무역 전쟁이 시장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전설적인 헤지펀드 매니저 로저스홀딩스의 짐 로저스 회장은 “무역전쟁이 재앙이라는 것은 충분히 역사적으로 입증돼왔다”며 “나는 매우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가만히 앉아서 관망할 것으로 보이는가”라고 반문하며 “중국은 미국산 농산물의 최대 고객이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를 최악의 상태로 다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무역전쟁으로 미국 증시가 생애 최악의 약세장을 연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 증시가 역사적으로 최고점에 근접한 가운데 나는 러시아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신흥시장에 투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