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광역단체장 예비후보 공천취소 승복 서약서 받아
대국민 사기극·정치공작 등 ‘미투’ 본질 훼손 우려 목소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국정 지지율을 토대로 압승을 기대했지만 연이은 미투 폭로로 인한 후폭풍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공천 후라도 도덕성 흠결 발견 시 공천 취소 승복’ 등 서약서를 받으면서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는 모습이다.
민주당은 충남에 이어 서울 등에서 터진 악재가 자칫 전체 선거판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감이 당내에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특히 민주당과 한국당의 의석 수 차이는 5석으로 민주당이 ‘불안한’ 1당을 유지하고 있어 미투 가해 의혹 당사자들에 대해 각각 다른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자신의 수행비서와 정책연구소 연구원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도의적 책임만 인정한 채 법정 다툼에 나서고 있다. 안 전 지사는 이미 변호인단을 구성해 본격적인 대응을 준비하고 있으며, 9일에는 검찰에 자진 출두해 조사를 받기도 했다. 안 전 지사가 ‘정계 은퇴’가 아닌 ‘정치활동 중단’이라는 표현을 쓴 만큼 향후 법정 투쟁을 통해 재기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민주당은 안 전 지사에 ‘제명’ 카드를 꺼내 들었다.
올해 지방선거에 출마한 정치인들은 적극 반박에 나서는 모습이다. 기자 지망생을 성추행한 의혹을 받고 있는 정봉주 전 의원은 이를 전면 부인하면서도 해당 보도를 한 언론사를 고소했다. 민주당 서울시당은 15일 당원자격심사위원회를 열어 정 전 의원의 복당 신청을 심사할 예정이다.
성추행 의혹에 휩싸인 민병두 의원은 당 지도부의 잇따른 만류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민주당은 “사실 확인이 우선”이라며 민 의원의 사퇴를 만류했지만 민 의원은 국회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천주교 신자인 민 의원은 모든 업무에서 벗어나 묵상·성찰·기도 등 수련을 갖는 ‘피정(避靜)’에 들어갈 것으로 전해졌다. 민 의원 측 관계자는 “모든 걸 내려놓았다”며 ”일상에서 벗어나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내연녀 공천과 불륜 의혹을 받고 있는 박수현 충남지사 예비후보는 “지방의원 공천에 특혜는 없었다”며 “부정 청탁을 들어주지 않자 보복성 정치공작을 벌이고 있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박했으나 결국 사퇴했다. 박 예비후보는 “물러서지 않겠다”며 중단했던 선거운동을 재개하는 등 억울함을 호소한 바 있다. 민주당은 14일 비공개 최고위원회를 열고 박 예비후보의 충남지사 선거 자격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애초 민주당은 이 회의에서 박 예비후보의 예비 후보 자격을 박탈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으나 2시간여 회의를 마치고 나온 참석자들은 회의 내용에 대해 말을 아꼈다. 윤관석 최고위원은 이날 여의도 당사 9층 대표실에서 진행된 비공개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소명을 충분히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박 예비 후보는 이날 오후 사퇴를 결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당은 14일 6·13 지방선거 공천 작업을 본격화하면서 예비후보들에게 ‘미투(Me too, 나도 고발한다)운동 지지’ ‘공천 후라도 도덕성 흠결 발견 시 공천 취소 승복’ 등을 요구하며 서약서를 받았다. 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이틀 일정으로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광역단체장 예비 후보들에 대한 면접을 시작했다.
서약서엔 “최근 사회적 이슈인 ‘미투운동’(성추행, 성폭행 등 성범죄)을 적극 지지하며, 공직 후보자로 우리 사회 인권 보호와 양성 평등 실현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과 “본인이 당의 후보자로 확정된 이후라도 공직자로서의 도덕성과 청렴성에 관련한 중대한 흠결이 추가로 발견돼 당이 공천 취소를 결정할 경우 이에 절대 승복하며, 어떠한 징계 조치도 감수할 것”이란 내용이 포함됐다. 아울러 “공천 결과 전적으로 승복”,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최선의 노력” 등의 약속도 받아냈다.
한편, 일각에서는 ‘미투’ 운동이 정치권으로 확산된 데에 대해 ‘미투’의 본질을 훼손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미투’ 혐의 제기 자체를 ‘대국민 사기극’, ‘정치 공작 가능성’까지 제기하니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모른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투 지지를 분명하고 명확하게 전했다. 13일 아산 경찰대 간부 후보생 합동 임용식에서 문 대통령은 “미투를 외친 여성들의 호소를 가슴으로 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또 사법당국에 대해 문 대통령은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행동에 호응, 적극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