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희 실장은 강단 있고 통상에 남다른 능력과 열정을 겸비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유창한 영어 실력과 빈틈없는 논리로 상대국 협상단을 압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행시 35회 출신으로 1992년 총무처에서 처음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유 실장은 통상산업부가 여성 통상 협상전문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선발한 ‘정부 공인’ 제1호 여성 통상 협상전문가다.
1995년 당시 한국에도 웬디 커틀러뿐 아니라 칼라 힐스, 수전 슈워브 등 미국 여성 통상전문가의 계보를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당시 통상 협상장에 까만 양복을 입은 대표단은 한국과 일본이 유일할 정도였다.
유명희 실장은 “당시 세계무역기구(WTO)가 공식 출범하던 시기여서 국제 통상이 뜨거운 이슈였고,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앞으로 할 일이 많은 분야여서 보람을 갖고 해보자고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유 실장은 통상을 하면서 미국 법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공무원 생활 중 1999년 미국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미국 명문 로스쿨인 밴더빌트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뉴욕주와 워싱턴 DC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땄다.
주로 FTA 협상에 주력해 온 유 실장은 다자 협상보다도 FTA 협상이 가장 치열하다고 했다.
“다자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하는 등 협력할 여지가 있다면, FTA 협상은 결과가 끝났을 때 주고받기의 산물이 법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법을 바꾸려면 상대방 개정 절차와 동의가 있어야 하는 것이므로 한글자 한글자에 피가 마름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공식 협상을 끝내고 곧바로 대책 회의에 보고서 작성까지 끝내면 새벽 1~2시가 기본이고 협상 중 잠은 2~3시간 자는 것이 고작이다. 그는 여자 공무원에겐 가정과 직장의 균형을 맞추는 게 평생 숙제라고 털어놨다.
한·미 FTA 2차 개정 협상 마지막날 고등학생이 되는 딸에게서 “교복이 어디 있냐”는 전화가 걸려와 그제서야 학교 개학인 것을 알게 됐다. 유 실장은 무거운 마음으로 협상장에 들어가야 했다.
유 실장은 “각자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정진하는 여성 후배들을 볼 때 선배로서 좋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여성 후배들에게 “육아는 평생 숙제라고 생각하고, 순간순간 좌절하지 말고 자기 페이스대로 계속 길을 찾고 정진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 실장은 여성이 조직 적응력이 부족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이 부족하다는 선입견을 깨기 위해 매일 저녁 사람들을 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열심히 참여했다고 했다. 하지만 미래세대의 구성원인 자녀와 대화를 하고, 자기계발을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 더욱 도움이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통상 분야는 실력이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국제 통상환경에서 끊임없이 최신 협상 사례를 업데이트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만다고 유 실장은 설명했다. 그는 매일 파이낸셜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을 읽는데 2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유 실장은 “여성 공무원들이 많아졌고 남성 중심 네트워크 조직문화가 반드시 올바른 건 아니다”며 “가치 판단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고 전문성을 쌓아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