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계 최대 쇼핑시즌으로 불렸던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Black Friday·추수감사절 다음 날인 금요일)’가 시들해지고 있다.
아마존닷컴의 부상과 함께 미국 소비자들의 소비패턴이 온라인 쇼핑으로 이동하면서 유통업계가 블랙프라이데이 파격세일을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미국 CNN머니는 23일(현지시간) 어쩌면 올해가 마지막 블랙프라이데이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소매업계의 상황이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블랙프라이데이는 소매업체들이 이날 1년간 쌓였던 막대한 재고를 폭탄세일로 전부 처리해 회계장부의 붉은색 적자 표시가 흑자를 나타내는 검은색으로 돌아선다는 의미로 붙여졌다. 그러나 전자상거래의 발달 등 달라진 환경에 소매업체들이 예년의 특수를 누릴 수 있을지 의문이 커지게 됐다. 한 마디로 블랙프라이데이가 ‘레드프라이데이’로 변질될 처지에 놓인 셈이다.
미국의 경제여건은 그 어느 때보다 양호하다. 지난달 실업률은 4.1%로, 지난 2000년 12월 이후 1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연율 3.0%로, 2분기 연속 3%대 성장률을 유지했다. 이에 쇼핑객의 지갑이 쉽게 열릴 것으로 기대되나 문제는 지갑이 열리는 장소다.
전미소매연맹(NRF)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59%의 쇼핑객이 온라인에서 쇼핑할 것이라고 답했다. 온라인이 오프라인 매장을 누르고 쇼핑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구매채널이 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로버트 슐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소매 부문 수석 애널리스트는 “홀리데이 쇼핑시즌은 항상 중요했지만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성이 커졌다”며 “올해 소비지출이 강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것이 오프라인 소매업체에 좋은 소식으로 연결될지는 불확실하다. 백화점들은 자신의 건재를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매 관련 싱크탱크 펑글로벌리테일앤드테크놀로지에 따르면 올 들어 지금까지 발표된 미국 소매업계 매장 폐쇄는 6735건으로, 지난해보다 세 배 이상 늘었으며 글로벌 금융위기가 강타했던 지난 2008년의 6163건을 넘어 이미 사상 최대치 기록을 나타냈다. 미국 최대 약국체인 월그린은 지난달 말 약 600개 매장 문을 닫을 것이라고 발표해 소매업계에 드리운 그림자를 더욱 짙어지게 했다. 이미 K마트와 시어스 JC페니 갭(GAP) 등 미국 대표 업체들이 줄줄이 매장 폐쇄에 나선 상태다. 심지어 크레디트스위스는 올해 최대 8600개에 달하는 미국 매장이 폐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욱 암울한 것은 매장 폐쇄를 넘어서 아예 망하는 소매업체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뱅크럽시데이터닷컴에 따르면 올 들어 지금까지 파산한 업체는 620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 증가했다. 여기에는 토이저러스와 짐보리 라디오쉑 페일리스슈즈와 같은 메이저 업체도 포함됐다.
전문가들은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매장이 폐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마이클 다트 AT커니 파트너는 “소매업체들이 온라인 투자를 더 늘리면서 내년에 약 9000개의 매장이 폐쇄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매장 문을 닫는 곳이 1만 개를 넘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트 파트너는 “올해 살아남은 소매업체도 비용구조를 합리화하고 매장을 더 폐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마존은 소비패턴 변화 혜택을 톡톡히 볼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타임스(NYT)는 올해 온라인 쇼핑을 계획한 홀리데이 쇼핑객 중 3분의 2가 아마존에서 제품을 구매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리서치업체 서베이몽키의 존 코헨 부사장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점점 더 많이 쇼핑할수록 아마존의 지배력도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변화에 따라 블랙프라이데이가 더는 의미가 없어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온·오프라인을 떠나 많은 소매업체가 블랙프라이데이가 시작하기 수일 전, 심지어 수주 전부터 세일을 시작하는가 하면 블랙프라이데이가 끝난 후에 더 나은 할인혜택을 제공하는 제품도 일부 등장하고 있기 때문. 소매업 전문 컨설팅 업체 아레트의 마이클 김 소매분석 대표는 “변화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어 올해 홀리데이 쇼핑시즌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