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시 ‘단풍’을 마음으로 읽는다. 구구절절 몸 구석구석까지 붉게 물들인다. 올가을엔 뭐가 그리 바빴는지 아랫녘엔 못 가고 북한산 단풍만을 만났다. 자주 가서 자세히 본 덕일까, 북한산에 당단풍 나무가 많다는 걸 알았다. 산 전체가 홍엽(紅葉)이다. 사람도 산의 품에 안기는 순간 붉게 변하니 인홍(人紅)이다. 맑은 계곡에 비친 수홍(水紅)까지 ‘삼홍(三紅)’의 아름다움을 만끽했으니 북한산이 명산임에 틀림없다.
함께 오른 이들과 단풍의 색을 표현해 봤다. 발갛다 발그레하다 빨갛다 빨그대대하다 빨그댕댕하다 빨그레하다 빨그스레하다 빨그족족하다 빨긋하다 불그무레하다 불그스레하다 등 수도 없이 이어진다. 재미가 들린 누군가의 제안으로 ‘은행잎 색깔 이어말하기’ 놀이도 했다. 막걸리를 걸고 한 내기라 다들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노랗다 노르께하다 노르끄레하다 노르무레하다 노르스름하다 노릇하다 노리께하다 누렇다 누르칙칙하다 샛노랗다 싯누렇다….
색감을 표현하는 우리말이 이토록 풍부했던가. 그 다양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하도 많아 잘 쓰이지 않는 말도 여럿이다. 그러고 보니 색을 대하는 우리네 정서가 참으로 섬세하다. 빨강은 ‘레드(red)’, 노랑은 ‘옐로(yellow)’ 등 한 단어로만 표현하는 영어권 사람들이 우리말을 어려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많은 이들이 쓰고 있지만 버려야 할 색깔도 있다. ‘살색’이 대표적이다. 인종에 따라 ‘살색’의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살색이란 말 그대로 ‘살갗의 색깔’을 뜻한다. 우리와 같은 피부색만 살색이고, 다른 피부색인 검은색 등은 살색이 아니라는 인종차별적인 관념이 담겨 있다. 이처럼 말글살이에는 알게 모르게 차별적인 말이나 표현들이 곳곳에 숨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2005년 국가기술표준원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살색을 살구색으로 바꿨다. 그 몇 해 전인 2001년 인권위가 ‘연주황’으로 쓸 것을 권고하자, 초·중학생 여섯 명이 알기 쉬운 우리말로 다시 정해 달라고 요청한 결과이다. ‘대한민국 어린이들’이라고 밝힌 학생들은 “어른들도 잘 모르는 ‘주황’을 왜 어린이들이 쓰는 크레파스와 물감의 색 이름으로 정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어른들만 아는 색깔은 어린이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야무지고 똑똑한 ‘대한민국 어린이들’ 덕에 이후 크레파스 등 문구류에서 살색은 완전히 사라졌다. 살색에서 살구색으로 한 글자만 더해졌을 뿐인데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물론 드라마와 예능, 영화 등에서도 살색이 하루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
‘곤색’과 ‘소라색’ 역시 피해야 할 표현이다. ‘곤(こん·紺)’, ‘소라(そら·空)’라는 일본말에 ‘색(色)’만 우리말로 읽은 국적불명의 희한한 말이기 때문이다. 감색(짙은 남색), 하늘색(연푸른색)으로 써야 한다.
색의 기본은 검정·하양·노랑·파랑·빨강이다. 우리 전통에서 검정은 물, 하양은 쇠, 노랑은 흙, 파랑은 나무, 빨강은 불을 의미한다. 당신은 무슨 색을 좋아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