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2008년 실체가 드러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 재산 4조4000억 원을 놓고 추가 과세를 검토하기로 했다. 만일 추가 과세가 확정될 경우, 이 회장은 최소 1000억 원대의 이자와 배당소득세를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
30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제법)’ 5조가 정하는 ‘비실명자산소득에 대한 차등과세’ 대상과 관련한 유권해석을 정비하기로 했다. 종전까지는 차명계좌라고 하더라도 명의인의 실명계좌이면 이 계좌에 든 예금·주식 등은 실명재산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려왔다. 다시 말해 차명계좌가 가공인물이 아닌 주민등록표상 명의로 된 계좌로 금융실명제법상 과세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금융위가 9년 만에 차명계좌에 대한 유권해석을 재검토한다. 앞으로는 ‘특정한 조건’을 충족하는 차명계좌의 경우에는 해당 계좌에 든 금융재산을 비실명재산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특정한 조건은 ‘수사당국의 수사나 금융감독원의 검사 과정, 국세청의 세무조사 등 공적 기관에서 차명계좌로 확인된 경우’를 가리킨다.
앞서 금감원 검사 결과, 이 회장의 불법 차명계좌 1000여 개가 계열사인 삼성증권, 주거래은행인 우리은행에 집중적으로 개설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회장이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된 4조4000억 원의 차명재산이 이들 계좌에서 빠져나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드러난 이 회장 차명계좌는 총 1199개, 이 중 1021개 계좌가 금감원 조사를 받았다. 은행 계좌가 64개, 증권 계좌가 957개다. 은행 계좌는 우리은행이 53개(약 83%)로 압도적이다. 이어 하나은행이 10개, 신한은행이 1개다. 증권 계좌는 삼성증권에 756개(약 79%)가 개설됐으며 이어 신한증권(76개), 한국투자(65개), 대우증권(19개), 한양증권(19개), 한화증권(16개), 하이증권(6개) 순이다.
이에 금융실명거래법 5조에 따라 이 회장의 차명계좌가 비실명자산으로 특정될 경우 계좌 개설일 이후 발생한 이자 및 배당소득에 대해 90%(지방세 포함 시 99%)의 세금이 추가 부과된다.
국세청은 2009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재산 4조4000억 원에 대한 종합소득세 명목으로 464억여 원을 걷었다. 당시 이자와 배당소득에 대해 계좌에 따라 최고 38% 세율을 적용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유권해석을 달리 할 경우 이미 낸 종합소득세 외에 52%에 해당하는 세율을 추가로 적용받게 돼 최소 1000억 원 이상 추가 납부가 예상된다.
앞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융실명제 시행 전후, 과세기간을 어떻게 따지느냐에 따라 부과액은 크게 차이가 날 수 있다”면서 “금감원 전수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최소 1000억 원 내지 수천억 원이 과세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