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의 외부 민간자문단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가 키코(KIKO) 사태를 다시 들여다본다. 은행이 자체 건전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 거래를 했는지를 다투는 데 그쳤던 키코 검사·제재 과정을 뒤엎고 재조사까지 이어질 수 있을 지 주목된다.
26일 금융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혁신위가 설정한 4가지 주제 중 ‘금융권 업무관행 개선 방안’에 키코 이슈가 포함됐다. 금융발전심의회의 특별위원회 성격인 혁신위는 지난달 학계·언론·소비자·업계 등 민간 인사 13명으로 구성됐다. 금융권 업무관행 개선 외에도 △금융행정의 투명성·책임성 제고방안 △인·허가 재량권 행사의 적정성 확보방안 △금융권 인사의 투명성·공정성 제고방안 등에 대해 문제점을 살피고 개선방안을 마련 중이다.
혁신위는 키코 사태에 대한 금융당국의 검사·제재 과정이 적절했는지 여부와 당시 은행의 키코 설계·판매 타당성을 들여다볼 예정이다. 당시 금융감독원은 키코를 판매한 금융회사들을 검사하면서 손실을 이전하는 거래를 했다거나 기업의 수출예상액을 과도하게 초과하는 ‘오버헤지’를 한 사유에 대해서만 집중 추궁했다. 이는 모두 금융회사 자체 건전성 측면의 문제로 관련자들은 물론 회사도 대부분 경징계를 받는 데 그쳤다.
그러나 혁신위는 키코 사태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회사가 거래 상대방이 망하거나 크게 손해를 볼 수 있을 정도의 상품을 설계하고 판매했다는 점에서 신의성실 원칙을 현격하게 위반했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회사는 타 업권보다 높은 수준의 공공성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부당한 업무관행으로 지적받을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이는 최근 키코 재조사를 추진 중인 피해기업들이 은행의 사기 혐의에 대해 강하게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기존에 키코 피해기업들은 민사소송에서 불완전판매 등을 주요 논지로 싸웠지만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당시 대법원은 적합성 원칙(투자자의 특성에 적합하게 투자를 권유할 의무가 있다는 것)과 설명의무에만 집중해 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장에 기업과 은행 양측이 섭외한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가 등장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키코가 헤지상품인지 여부를 다투는 데 그쳤다. 애초에 은행이 설계·판매해서는 안되는 상품이었다는 점에 대해 법원은 물론 금감원의 검토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혁신위는 10월 중순까지 개선방안을 마련해 금융위원장에게 키코 등 검토 사안에 대한 권고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권고 수준에 따라 금감원이 키코 사태를 전면 재조사할 수 있다. 금감원의 재조사가 진행되면 무혐의로 종결됐던 형사소송 역시 새로운 근거를 찾을 수 있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