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중소·벤처기업 육성’ 정책 기조에 맞춰 내년도 중소벤처기업부의 예산을 확대 편성했다.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429조 원 규모의 2018년 예산안에서 중소기업벤처부는 8조5793억 원을 편성 받았다. 세부 현황을 보면 일반예산이 2조2631억 원으로 전년 대비 1.6% 증가했고, 기금은 6조3162억 원으로 같은 기간 0.1% 늘었다.
새정부의 적극적인 중소벤처기업 육성책에도 자본시장은 여전히 대기업 중심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코스피지수가 17.4% 오르는 동안 코스닥지수는 3.9% 상승하는 데 그쳤다. 코넥스시장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13년 출범한 코넥스 지수는 2015년 이후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넥스협회 김군호(56) 회장을 만나 지난 4년간 코넥스시장의 소회와 향후 시장 발전을 위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물었다. 김 회장은 중소·벤처기업 육성 정책이 필수 과제로 대두된 현 시대에 코넥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코넥스 4년… 이제는 질적 성장 절실 = 올해로 출범 4주년을 맞은 코넥스시장은 지난 4년간 시장규모, 자금조달, 코스닥 이전상장 등이 꾸준히 증가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코넥스 상장기업은 총 149개사로 개장 당시 21개사보다 7배 이상 늘었다. 시가총액도 같은 기간 4689억 원에서 4조1579억 원으로 9배 가까이 증가했다. 일평균 거래규모는 2013년 시장개설 초 대비 약 4배 증가했고, 일평균 거래량도 6만 주에서 25만 주로 늘었다.
김 회장은 “양적 성장은 명확하지만, 질적 성장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코넥스시장의 스타트는 좋았지만, 유망 기업의 이탈과 시장 관심 저하로 2015년 이후 정체된 상태”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코넥스의 코스닥 이전상장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 점이 오히려 시장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4년간 코넥스시장에서 27개 기업이 코스닥에 이전상장했다. 김 회장은 “전체 상장기업에서 떠난 기업의 비율이 18%에 달한다. 좋은 기업이 이전상장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신규 진입이 없으면 성장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또 코넥스시장 활성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 “상장기업에 대한 인센티브가 없다”고 지적했다. 2015년 코넥스시장 참여자의 기본 예탁금을 3억 원에서 1억 원으로 낮추고 소액투자자 전용계좌를 도입했지만, 오히려 시장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코넥스 기업의 주식 양도소득세 기준이 4% 이상 10억 원 이상인데, 이 역시 코스피, 코스닥에 비해 과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회장은 “코넥스는 코스닥으로 넘어가기 위한 시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작은 벤처기업이 코넥스에 올 인센티브를 마련해줘야 한다. ‘넘어가는 시장’의 정체성을 갖고 출발했지만, 고성장할 수 있는 기업이 남아있도록 재점검해야 할 타이밍이 왔다. 침체기가 계속된다면 이 시장은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심 대비 실익 없어… 정부 정책과 연관성 찾아야 = 김 회장은 현 정부가 중소·벤처기업 육성을 천명한 만큼, 지금이 코넥스 발전의 적기라고 판단했다. 대기업 공정거래도 중요하지만, 중소기업 육성의 희망은 코넥스에서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코넥스가 활성화된다면 혁신 중소·벤처기업을 찾을 수 있고, 일자리 창출에도 활력소가 될 수 있다는 것.
김 회장은 “코넥스에서 자금 조달을 통한 기업 발전을 꾀하기 위해서는 정책 전반을 봐야 한다. 코넥스 관련 통계도 다시 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2000년 일었던 벤처 붐을 언급하며 정책의 일관성을 주장했다. 일관된 정책 방향이 나와야 기업들과 투자자들이 코넥스에 투자할 수 있다는 주문이다. 그는 “2000년도 벤처 붐이 일어났을 때 네이버, 카카오 같은 맹아(萌芽·새로 트는 싹)들이 나왔다”며 “한국경제가 전통적인 재벌 중심으로 가는 것보다 이런 혁신기업이 나와 세대교체가 된다면 4차 산업으로의 변화가 앞당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코넥스가 금융위원회 및 중소벤처기업부의 정책과 연결성을 가져야 발전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협회 차원에서도 꾸준한 건의가 이어지고 있다. 당장 김 회장은 이달 21일로 예정된 코넥스 정책 세미나에 참석한다. 그는 “벤처 지원책에도 코넥스 기업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을 주로 언급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김 회장은 특히 “세금 인센티브를 준다면 시장이 다시 살 수 있다. 결국은 자금 조달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당국도 대기업 집중현상을 낮추고, 경제 활력도를 높이기 위해서 이 시장을 만든 것”이라며 “정책적으로 해결하면 많은 문제가 풀린다. 결국은 제도의 문제다. 구글, 페이스북 등처럼 차등의결권을 도입해서 창업자 지분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미국의 사례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혁신기업 ‘FANG’, 코넥스에서 찾는 날 올까 = 김 회장은 코넥스는 실험의 장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미국 기술주를 상징하는 ‘FANG(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구글)’을 언급했다. 그는 “미국은 페이스북, 아마존 등 기술혁신 기업이 시가총액 상위 종목을 다 차지하고 있다”며 “우리도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 중심이 코넥스다. 물론, 벤처기업이 다 생존할 수는 없지만, 일부만 살아남아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도 100%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미국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또 런던 증권거래소(London Stock Exchange)의 AIM시장을 예로 들면서 “AIM시장은 전 세계 3500개 고성장 기업이 모여 있는 성공한 시장이다”라며 “문호 개방도 중요하지만 기업들이 계속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실적 공시도 연간 기준으로만 적용되고 있는데, 최소 반기 공시는 할 수 있게 만들어야 개인투자자의 참여를 촉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처럼 코넥스는 개인투자자의 참여가 상당히 제한된 시장이다. 당초 코넥스시장이 창투회사의 세컨더리마켓으로 디자인되면서 개인의 참여가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큰 돌, 작은 돌이 섞인 생태계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개인의 참여가 저조하니 기관들이 물량을 떨구는 시장이 됐다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또 투자자 이탈이 유망 기업의 시장 참여를 저해하면서 시장이 침체되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기업이 와야 한다. 현재 150개 기업이 코넥스에 상장돼 있다. 과거에 비해 기업 수는 늘었지만 증가 속도는 확실히 줄었다. 이대로 가면 올해 200개까지 못 간다. 기업 수가 늘어나지 않으면 코스닥에 가기 위한 통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코넥스 상장기업이 1000개가 됐을 때 바람직한 상황이 될 것이다. 코넥스 상장기업이 제일 많고, 코스닥, 코스피 순으로 가야 한다. 이 경우 이전상장의 효율성도 높아질 것이다. 성장 사다리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 정립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김 회장은 코넥스 상장을 고민하는 기업에 성장을 위한 발판이 되겠다고 조언했다. 그는 “공모를 통해 코넥스에 상장했다는 것은 엄격한 공익적 규제를 받아야 한다. 코스닥시장에 바로 가는 것보다 코넥스가 연습의 장이 될 수 있다”며 “코넥스가 투자자들과 이해 당사자들의 시장 이해도를 높인다면 대주주와 경영자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협회 차원의 IR교육은 물론이고, 상장 규정 이해 제고, 이전상장 지원 등의 활동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군호 코넥스협회장은?
1961년 대구 출생으로 1986년 고려증권 조사부로 증권업계에 입문했다. 이후 삼성증권 투자전략팀장을 거쳐 2000년 7월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를 설립하고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2009년 한국장학재단 채권전문가 자문위원, 2012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 외부 자문위원 등을 거쳐 2014년 7월부터 코넥스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코넥스 시장은?
코스닥시장 상장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벤처·중소기업을 위해 2013년 7월 개장한 중소기업 전용 주식시장이다. 자기자본 5억 원, 매출액 10억 원, 순이익 3억 원 이상이라는 조건 중 한 가지만 충족하면 상장할 수 있다. 유가증권시장, 코스닥시장에 이은 제3의 주식시장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