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金)은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이며 오래된 화폐다. 각국 중앙은행의 보증이 필요한 돈과 달리 세계 어느 곳에서나 통용된다. 화폐가 발달한 이후에도 본원통화로 사용됐고, 오늘날에도 ‘최고의 안전자산’이라는 지위를 잃지 않고 있다. 1997년 우리나라에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국민들이 ‘금 모으기 운동’을 벌인 것도 이 때문이다. 평가가치가 크게 떨어진 원화를 대신해 절대화폐인 금을 모아 외환 보유고를 늘리자는 취지였다.
각국의 금 보유량은 그 나라의 경제적 영향력과 어느 정도 상관 관계를 보인다. 2015년 기준 세계 중앙은행의 금 보유 1위는 미국(8134톤), 2위는 독일(3381톤)이다. 이어 이탈리아(2452톤), 프랑스(2436톤), 중국(1723톤), 러시아(1370톤), 스위스(1040톤), 일본(765톤)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한국은행은 104.4톤으로 34위다. 순위를 보면 금 보유량이 많은 국가는 주로 우리에게 익숙한 강대국이 많다. 이는 화폐경제가 고도화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금 시장이 그 나라의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방증한다.
◇국내 금 거래량 한 해 110톤… 대부분은 ‘음성 거래’ = 우리나라의 금 시장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 2013년 정부가 추정한 자료에 따르면 밀수금을 제외한 국내 금 유통 규모는 연간 110톤가량으로 추정된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금 보유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1g에 4만8000원 선에서 거래되는 최근 국내 금 시세를 적용하면 약 5조3000억 원 규모의 거대 시장이다.
하지만 국내 금 시장의 문제점은 유통량의 대부분이 ‘지하경제’에 속한다는 것. 일반적인 금 거래의 대부분이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고 이뤄지기 때문에 전체 국민 경제에 대한 기여도가 높지 않다. 정부는 전체 유통량의 60~70%가량이 무자료 음성거래인 것으로 보고 있다. 전체 거래량 5조3000억 원 중 약 3조5000억 원에 해당하는 금이 음성적으로 거래되고 있는 것을 뜻한다.
시장이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국내 금 유통의 문제점이다. 보통 ‘금을 산다’고 하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귀금속 상점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사실 일반 구매자 입장에서 구입한 금이 진짜인지는 확인하기 매우 어렵다. 귀금속 도매상에서 매매상에게 속아 덤터기를 쓰는 일도 많다. 또 최근처럼 정세가 불안할 때 안전자산 취득 목적으로 금을 사 두려는 수요자라면 ‘금 두꺼비’ 등에 붙는 디자인, 세공 비용이 영 탐탁지 않을 수도 있다.
◇양성화 위한 KRX금시장… 시장 정착은 아직 = 국내 금 유통시장의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KRX금시장이 있다. 정부가 2014년 당시 한국거래소(KRX)를 통해 설립한 국내 유일의 장내 금 현물거래시장이다.
KRX금시장을 통한 금 거래는 장점이 많다. 한국조폐공사가 품질을 인증한 순도 99.99%의 금을 거래하기 때문에 품질에 대한 우려가 없고, 주식 시장처럼 매도 매수자가 동시에 거래에 참여해 투명한 시장가격이 형성된다는 점이 매력이다. 정부가 밀어주는 만큼 세금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KRX금시장 거래 시 양도·배당·이자소득세가 없고,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에서도 제외되기 때문이다.
시장 전문가들도 불투명했던 금 거래를 양성화한 동시에 신뢰성을 가진 금 거래가 가능해졌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만 여전히 전체 금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인지도가 낮다는 점은 앞으로 KRX금시장의 과제다. 거래소에 따르면 시장 개설 이후 현재(8월 말 기준)까지 KRX금시장에서 거래된 금은 총 1만1251㎏, 금액으로는 약 5091억 원으로 전체 금 유통시장 규모에 비하면 여전히 크지 않다.
최근에는 북한의 연이은 도발 등으로 금 투자 수요가 더욱 늘어난 추세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KRX금시장의 인지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면서 “한국거래소를 통해 금 거래가 가능하다는 것을 모르는 투자자가 아직 많은 만큼, 금 관련 정보를 폭 넓게 제공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