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되고 말았지만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이른 새벽 우물에서 첫 물을 길어다 정갈한 그릇에 담아 장독대에 올려놓고 소원을 간절히 빌었다. 그 물을 정화수(井華水)라고 한다. ‘우물 정’, ‘빛날 화’, ‘물 수’이니 직역하자면 ‘우물에서 길어 온 빛나는 물’이라는 뜻이다. 우물에서 길어 온 맹물 한 그릇이 뭐가 그리도 빛나기에 ‘華’자를 붙여서 정화수라고 했을까?
요즈음 사람들의 눈에는 보석이나 명품처럼 우선 값이 비싸야 화려한 것으로 보이겠지만 옛 사람들의 눈에는 정성이 곧 화려함이었다. 한 땀 한 땀 이어진 바느질,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간 글씨, 어느 한 구석에도 정성의 빈틈이 없을 때 진정한 화려함으로 여겼다. 명품도 브랜드화하기 전까지는 본래 그런 정성이 담긴 물건의 이름이었다. 물론 지금도 장인들이 정성을 다하여 물건을 만들겠지만 어쩐지 정성보다는 한번 얻은 브랜드 가치로 인해 명품으로 행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난한 살림이라서 신(神)께 드릴 거라곤 없었으니 우리 어머니들은 이른 새벽에 나가 밤새 고인 우물물이라도 첫 물로 떠다가 신께 드리며 그 물로 신과 교감하고자 했다. 우물물은 밤새 지구의 심층부에서 우러나온 정기가 배여 고인 물이다. 전혀 외풍을 타지 않는 우물 속이라서 미동의 파문도 없이 가장 고요한 상태로 가장 신령스러운 물을 담고 있는 게 새벽 우물인 것이다. 색깔로 치자면 순백의 물이다. 순백처럼 화려한 색이 또 있을까? 이처럼 새벽에 길어 올린 첫 우물물은 신을 감동시킬 수 있을 만큼 화려한 물이다. 그래서 정화수이다.
더운 여름에 우리 어머니들이 소원을 빌던 정화수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두레박이 아닌 요란한 기계로 퍼 올린 점이 다를 뿐, 생수도 깊은 땅 속에서 퍼 올린 물이다. 냉장고 속 생수를 정화수로 여기며 마셔 보자. 삶이 절로 신령스러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