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첫사랑, 그리고 결혼에 대한 고찰(考察)

입력 2017-07-25 10:31 수정 2017-07-2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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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선 브랜드 인큐베이팅그룹 ㈜커뮤즈파트너스 대표이사

철 지난 영화 한 편을 봤다. 바로 ‘김종욱 찾기’다. 뭐든 끝을 보는 것이 싫어 호두과자도 한 개는 꼭 남겨놓는 여자. 엔딩이 싫어 책의 결말도 외면하고 안 읽는다던 그녀가 인도에서 만난 첫사랑과의 재회마저 외면한 깊은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좋을 때의 감정을 결말 없이 남겨놓아야 두고두고 잊지 못할 ‘첫’사랑이 되고, 그런 첫사랑 하나쯤 소유한 여자가 되어 그것을 쌈짓돈 삼아 험난한 이 세상에 자립하고자 했던 어린 처녀의 몸부림이 아니었나 싶다. 인연은 붙잡았을 때만 비로소 운명이 된다던 영화 속 세월 묻은 대사처럼 운명의 시험대에 자기를 ‘철없이’ 올려놓는 인연이 바로 결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알렝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신작 소설이 올봄 출간됐다. 영문명으로는 ‘The Course of Love’. 우리나라에서는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라고 번역돼 소개된 이 책은 젊은 연인에게는 어려워서 집중해 읽어야 한다는 후기가 가득한 반면 결혼을 경험한 40대 유부(有婦)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공감과 위안을 주기에 충분하다. 작가의 문체가 그러하듯이 연애와 결혼, 그리고 외도와 미래에 대한 독자의 생각에 이르기까지 그의 경험적 일화와 심리학적 에세이 투는 잘 맞아떨어진다.

스무 해 이상을 따로 살아온 남녀가 자기 삶의 극히 일부라도 내어줘야만 비로소 서로를 알아갈 수 있기에 결혼은 삶에 있어서는 결과가 아닌 지극히 기초적인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둘 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라고 명명돼 미래에 대해 무한히 낙관적인, 기이한 행동을 하는 것이 바로 결혼이라고 설명한다.

“보통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은 단지 사랑의 시작이다.”(p18) “결혼: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p65) “결혼: 자신이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가하는 대단히 기이하고 궁극적으로 불친절한 행위”(p237) “결혼한 지는 16년이 되었지만 이제야 좀 늦게 라비는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낀다.”(p277)

뒤통수를 한 방 세게 맞은 듯하다. 결혼이라는 것이 사랑의 결실이 아닌 ‘시작’이라는 말에 극도로 공감한다. 그의 말처럼 완벽한 결혼은 없고, 어지간히 좋은 결혼만이 있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누구든 좀 더 나은 결혼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오답노트를 만들 듯 공감이 피어날 때는 이미 때늦은 복습의 시간일 텐데 ‘어지간히’ 좋은 결혼에 충실하며 ‘어지간히’ 살아갈 용기는 우리에게 없었던 걸까? 아니면 인간의 욕심이 결혼 당사자인 서로에게만큼은 과하게 적용된 것일까?

“우리가 익혀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한두 가지 면에서 다소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쾌히 인정할 줄 아는 간헐적인 능력이다.”(P116) 나만 특출나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모두 옳거나 합리적이라는 자의식(自意識)이 얼마나 자신을 옭아매는지 그 허울에서 우리는 빠져나와야 살아가기 편하다. 다소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잘못인 것도 용서되고 쉬 넘어갈 수 있잖은가. 내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고, 상대의 잘잘못을 일일이 짚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릴 사이라면 애초부터 첫사랑이든 결혼이든 그 싹부터 무지하게 피곤해지기 마련이다. 첫사랑은 처음의 만남을 뜻하는 무미건조한 단어로, 결혼은 사랑의 시작임을 알리는 긴장의 신호탄 정도의 감정적 언어로 치부되면 그저 좋을 일이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다. 완전하지 않기에 실수가 있고, 그 대가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상대가 촉진제 역할을 해줄 수 있으며, 이성(異性)이 아니라도 수많은 예술이 감동과 눈물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그렇기에 그 어떤 삶이라도 우울하면서도 재미지고, 힘 빠지면서도 도약하게 된다. 모든 결말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 지금에 와서야 현명해 보일 정도로 우리 인생의 끝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없으며 영화의 주인공처럼 그저 ‘끝을 희망하는 것’만이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이 신이 우리에게 내어준 재미있는 숙명(宿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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