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미국 달러화 가치가 주요 통화대비 6% 가까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초 이른바 도널드 트럼프 랠리로 초강세를 보였으나 상반기 기준으로는 6년 만의 최악의 성적을 기록, 하반기에도 강세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제기됐다고 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16개 주요 통화 대비 미국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WSJ달러인덱스는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5.6% 떨어졌다. 이는 2개 분기 통합 기준으로는 2011년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특히 달러 가치는 글로벌 주요 통화 가운데서도 올해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올해 초만해도 시장에서 달러 약세를 점치는 투자자는 많지 않았다. 시장의 예상을 뒤집고 지난해 11월 대선에 승리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인프라 투자정책, 규제완화 등의 공약에 대한 기대감에 달러는 고공행진했다. 여기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전망까지 겹치면서 1월 초 달러 가치는 14년래 최고치 행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달러의 트럼프 랠리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반이민행정명령 등 트럼프 행정부의 각종 정책 행보가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히자 친성장 정책이 속도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달러 가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 사이 경제 성장과 고용, 물가 지표가 약세를 보이면서 미국 경제 낙관론도 후퇴했다. 반면 유럽과 신흥국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커졌고 이는 달러 약세로 이어졌다.
최근 연준에 이어 유럽과 주요국가 중앙은행들이 테이퍼링(경기부양책 규모 축소) 움직임을 시사한 것도 달러 강세 후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난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와 마크 카니 영란은행(BOE) 총재, 린 패터슨 캐나다 중앙은행(BOC) 부총재가 ECB 포럼에 참석해 테이퍼링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달러 대비 영국 파운드와 캐나다 달러 가치는 모두 2% 뛰었다.
연준이 올해 추가로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기대마저 흐려지면서 달러 전망도 덩달아 흐려지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 그룹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FF) 금리선물 시장은 올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54%로 내다봤다. 이는 지난 3월 집계치인 62%에 비해 줄어든 것이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헤지펀드와 투자자들의 달러 강세 베팅규모가 지난해 말 280억 달러에서 지난달 27일 27억 달러로 급감했다. 마크 매코믹 TD증권 북미 외환전략팀장은 “미국 (경기 회복세)가 감속하는 사이에 나머지 국가의 분위기가 나아지고 있고 이러한 분위기가 달러 가치에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펜하이머 펀드의 알레시오 드 롱기스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미국의 성장 모멘텀이 사라지고 있다”면서 “세제 개편 활성화가 없다면 달러 강세장은 끝난 일”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