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혈경쟁 그만”목상자 제조하던 경쟁 3사 뭉쳐 2007년 유통법인 ‘제일SNC’ 설립
공동구매 전략 첫해 40억 매출 빠른 성장세 맞춰 내실 다지니 유동성 해결
영업 다변화, 마진율 높여…“회사 年매출이 1000억까지 불어나면 수출기업으로 변신 꿈꿔 ”
비닐, 테이프, 랩 같은 포장재는 우리 주위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만 국내에서 제조되는 것은 거의 없다. 대부분 동남아를 비롯해 해외에서 생산되는 품목이다. 제일SNC는 해외 생산 대기업으로부터 국내에 이런 포장재를 들여와 유통하는 회사다. 김도규 대표는 회사를 설립한 이후 10년 동안 매 단계마다 승부수를 띄우며 시장점유율을 꾸준히 높여온 ‘타고난 장사꾼’이다.
지난달 15일 경기도 오산시 제일SNC 사무실에서 만난 김도규 대표(50)는 “앞으로 한국에서 포장재를 유통하려는 해외 포장재 생산회사들은 제일SNC를 거쳐갈 수밖에 없도록 할 것”이라며 “현재 해외 공급자가 우위를 차지한 국내 포장재 유통시장을 제일SNC가 수요자 우위로 바꾸어놓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해외 공급자란 동남아 등지에서 포장재를 생산하는 제조 대기업을 의미한다. 국내 포장재 유통사들이 이들 대기업으로부터 소량 수입해 유통하는 현 구조 하에서는 이런 해외 공급자들이 가격결정자가 된다. 김 대표는 제일SNC를 ‘큰손 유통상’이 될 수 있도록 몸집을 키워 이들 해외 공급자로부터 협상력을 되찾고 싶다고 말한다.
이미 제일SNC는 단기간에 어엿한 규모의 중소 포장재 유통사로 성장해 대기업들과 해외 기업들도 찾아오는 회사가 됐다. 2007년 10월 회사를 설립한 후 2008년 첫해 4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회사는 이후 매년 2배 씩 매출을 늘리며 설립 4년 만에 매출 340억 원, 지난해에는 500억 원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다.
2007년 40세의 나이로 포장재 유통회사를 차린 것은 직전까지 포장재 제조업체를 운영해온 김 대표의 경험이 출발점이 됐다. 그는 31세에 다니던 회사에서 독립해 목상자 제조업체인 ‘SPL’을 운영해왔다. 주로 대기업이 해외로 수출하는 중량있는 제품을 안전하게 운반하기 위해 필요한 목재 포장재를 공급하는 회사였다. 김 대표는 “당시 거래 대기업들이 매년 입찰을 시켰기 때문에 목상자 제조업체들은 경쟁이 치열했다. 단가도 공개되고 수익이 날 수 없는 구조였다”고 돌이켰다.
당시 중부지방에서 대기업이 관련 입찰을 붙일 때마다 매번 SPL과 함께 경쟁하던 목상자 제조사가 두곳(ULP, 대한수출포장)이 있었는데 김 대표는 이들 두 업체 대표에게 공동 구매를 제안했다. "앞으로 SPL은 두 업체와의 신규 입찰 경쟁에서 빠지겠다. 목상자 제조에 필요한 포장재를 유통하는 신규 법인을 설립할 테니 함께 투자하고 이 법인을 통해 포장재를 싼값에 공동 구매하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지난 2007년 말 김 대표가 1억원, 경쟁사였던 두 업체 대표가 각각 5000만 원을 투자한 제일SNC가 설립됐다. 설립 초에는 이런 공동구매가 얼마나 오래가겠느냐는 의구심 때문에 투자자들조차 반신반의했다. 김 대표는 공동구매에 초점을 맞춰 공급자로부터 대량 구매하고 이를 통해 수요자에게 저가에 공급하면서 거래 물량을 키우는데 주력했다. 회사의 놀라운 성장세에 유통업에게는 까다롭던 금융권도 자금줄을 잇따라 열어줬다.
김 대표는 “성장세가 빠르다 보니 오히려 겁이 덜컥 났다”면서 “당분간 매출보다는 내실을 다져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우선 늘어난 매출과 함께 늘어난 부실을 중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증자를 통해 두 투자사의 보유지분을 25%에서 20%로 낮추고 제일SNC 직원들의 보유분을 10%로 올렸다. 2014년부터는 미수금과 불량채권을 본격적으로 정리했다. 재무제표상 부채비율이 낮아지니 자금 대출이 쉬워졌고 다시 성장의 발판이 마련됐다.
최근 김 대표는 매출이 늘어나는 만큼 영업익을 함께 늘리기 위해 서브원과 아이마켓코리아, KeP 등 대기업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로 이뤄져있던 거래사의 다변화도 시작했다. 그는 “대기업과 거래하면 수급문제는 해결되지만 수익율이 낮아지는 문제가 생긴다”면서 “그래서 구매 단위가 작은 유통기업, 중소기업 등으로 영업을 다변화해 마진율을 높였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도 기존 유통사와는 차원이 다른 서비스와 비상 대응능력이 있는 우리 회사와의 거래에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제 몸집을 키워 마진을 올리는 ’볼륨 비즈니스’ 전략을 버리고 새로운 전략으로 전환할 시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명 ‘보물찾기 프로젝트’다. 김 대표는 “보다 수익률이 높은 차기 사업을 시작할 것”이라면서 “이미 1년 전부터 회사 무역팀 직원을 중국이나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의 생산 국가로 보내 새로운 포장재 품목을 찾아왔다”고 밝혔다. 다양한 포장재로 취급 품목을 넓히고 이를 필요로 하는 국내 소규모 수요들을 개발해 유통 서비스를 다변화하겠다는 의미다.
장기적인 비전과 목표도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뚜렷하다. 김 대표는 “회사 연매출이 1000억 원 정도까지 불어나면 화장품, 의약품 등을 담는 용기 사업도 시작해보고자 한다”면서 “지금 포장재는 국내 제조업이 거의 없어 해외 수출이 힘들지만 용기는 디자인이나 기술력 같은 아이디어 싸움이 필요한 영역이라 충분히 해외로 수출할 수 있다”며 수출기업으로의 변신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