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오랜 수교국이었던 파나마가 대만과 단교를 선언하고 중국과 국교를 수립해 파문이 일고 있다. 대만의 독립을 주장하는 차이잉원 총통은 100년 넘게 수교를 이어온 파나마의 배신으로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후안 카를로스 바렐라 파나마 대통령은 지난 12일(현지시간) TV 연설에서 “파나마 운하의 두 번째로 중요한 고객인 중국과 정식으로 수교한다”고 선언했다. 이튿날 이사벨 세인트 말로 파나마 부통령 겸 외교장관은 베이징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국교 수립 문서에 서명했다. 대만 정부는 파나마를 향해 “끝까지 대만을 기만했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4일 파나마가 이미 10년 전부터 대만과의 단교를 시도해왔다고 보도하면서 대만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영국 BBC는 많지 않은 수교국 관리에 총력을 기울였던 대만이 파나마를 시작으로 수교국을 줄줄이 잃을 위기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대만 정부는 그간 수교국 유지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더욱 민첩한 지원과 교류를 위해 수교국의 대사관을 한 건물에 유치시키는 등 수교국 관리에 애를 써왔다. 하지만 BBC는 ‘대륙의 외교 머니’에 대만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만 중앙통신은 중국이 수교 직전 파나마 항만에 10억 달러(약 1조1245억원)를 투자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파나마를 상대로 ‘금전 외교’를 벌였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실제로 전날 대만 총통부는 파나마와 관계 중단을 선언하며 “여러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우방과 협력했지만, 금전을 투입한 외교 방식으로 경쟁을 벌일 수는 없었다”고 토로했다. 중국이 외교 머니로 대만의 수교국을 빼돌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독립 성향이 짙은 인사가 집권할 때마다 대만은 수교국을 중국에 내줘야 했다. 중국이 이때를 놓치지 않고 대만의 수교국에 막대한 투자를 약속하며 대만과의 단교를 유도한다는 이야기다. 독립을 주장하는 민주진보당이 집권했던 2000년에서 2008년 사이 대만은 코스타리카, 세네갈, 도미니카 공화국, 바누아투, 라이베리아, 말라위, 그레나다, 차드 등 상당한 수교국을 잃었다. 반대로 친중 성향의 인사가 집권하면 대만 수교국 유출이 잦아드는 경향이 있다고 BBC는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파나마가 대만과의 단교·중국과의 수교를 2010년에도 시도했으나 당시 중국이 친중 성향의 마잉주 정부와의 관계가 껄끄러워질 수 있다고 판단해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나마의 이탈로 1990년대 초 30개국이었던 대만의 수교국은 이제 바티칸을 포함해 20개국으로 줄었다. 전문가들은 대만이 중국과 마찰을 빚는 한 수교국 이탈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앙아프리카의 국가들이 대만과의 단교의 대가로 단순히 돈이 아니라 중국과의 수교로 외교적 지위가 올라가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이탈 가능성은 더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미 중남미 국가인 엘살바도르와 니카라과 단교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