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결혼관을 주제로 한 설문조사에서 “결혼 생활 중 이혼을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란 질문에 70% 이상의 응답자가 “물론 그렇다”에 동그라미를 했다. “그런데 왜 이혼 안 하셨나요?”라고 다시 물었다. 예상했던 대로 “자녀 때문에”란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정작 눈에 띄었던 답변은 두 번째로 높았던 “배우자가 잘되는 것(꼴) 보기 싫어서”였다. 한국 가족의 민낯을 본 것 같아 왠지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의 조(粗)이혼율은 한때 47.4%까지 치솟았다가 지금은 40% 수준으로 다소 감소했다. 조이혼율이란 ‘인구 1000명당 이혼하는 쌍/결혼하는 쌍의 비율’로, 문자 그대로 조악한 이혼율 계산법이다. 실제로 결혼 연령은 제한되어 있지만 이혼 연령은 상대적으로 광범위해서, 조이혼율은 실제 이혼율보다 부풀려지게 마련이다. 조이혼율이 47%라 해서 100쌍이 결혼하면 그 가운데 47쌍이 이혼한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실제 이혼율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결혼한 부부를 계속 추적해서 언제 이혼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통계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비용 부담이 크기에 선뜻 엄두를 내지 못한다.
미국에서는 조이혼율이 53%를 기록했던 시절, 7년에 걸쳐 표본 추적 조사를 통해 실제 이혼율을 계산해 본 결과 약 38%로 나타났다.
한국의 조이혼율 통계는 두 가지의 흥미로운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가장 짧은 기간 안에 가장 빠른 상승세를 보인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 간 비교 연구 시 한국의 이혼율 자료가 포함될 경우 회귀 방정식 곡선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아, 한국은 ‘통계적 아웃라이어’로 분류된다.
실제로 198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의 조이혼율은 극히 낮은 5%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이후 1990년 중반까지 완만하게 증가하다 1995 ~ 2000년 사이 17.1%에서 32.5%로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그린 후 2000년대 후반 정점을 찍은 바 있다.
다른 하나의 특징은 일본과 함께 황혼 이혼이 신혼 이혼을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별히 한국에서는 1993년 부부재산분할청구권 도입 이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인 중년 이혼이 3년 전부터는 신혼 이혼을 뛰어넘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의 이혼이 주로 신혼 이혼임에 반해, 한국과 일본에서는 중년 이혼이 대세가 되고 있음은 고령사회의 문턱에서 붉은 신호등이 켜진 상황이라 하겠다.
중년 이혼율 증가에 고령화가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음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이다. 과거 한국 가족의 생애주기에서는 막내 자녀를 결혼시킨 후 배우자 사망에 이르는 시기가 마이너스(-)로 나타났다. 막내 자녀를 결혼시키기 전에 배우자가 사망했다는 의미이다. 한데 오늘날은 막내 자녀를 결혼시킨 후 노부부만 남는 시기가 12 ~ 15년으로 연장되었다.
어차피 자녀 수가 많고 평균 수명이 짧았던 시기의 가족은 부부 대신 부모·자녀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을 테지만, 자녀는 적게 낳고 평균수명이 길어진 상황에서는 부부 중심 가족으로 이동함이 자연스러운 이치일 것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10명 중 1명만이 동의하고 있음은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 해야 할지, 안타깝다고 해야 할지.(참고로 남편 2명 중 1명은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부인과 결혼하겠다고 답했다.)
5월이면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년의날, 스승의날까지,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날들이 많고 많건만 새삼 부부의날까지 만든 데에는 깊고 깊은 뜻이 있음을 새겨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