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복지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 마련 방안을 물을 때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앞세우며 증세는 않겠다고 했다. 이번 대선 유력 후보들은 ‘지하경제 양성화’와 같은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지 않으면서도 서민증세 없이 공약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소요 예산과 마련책은 밝히지 않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공약 이행을 위해 필요한 예산이 집권 5년간 연 35조 원 수준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고소득자, 대기업에 대한 증세로 메운다는 구상이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구간을 낮추고, 고액 상속·증여세 적용, 고액 부동산에 대한 임대소득세 인상, 대기업 실효세율(각종 조세 감면을 받더라도 내야 하는 최소한의 세금을 산정할 때 적용하는 세율) 인상 등을 단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올해만 8조 원 등 초과세수 증가분, 자연증가분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문 후보는 단계적 증세 방안을 담은 공약집을 곧 내놓을 예정이다.
그러나 문 후보가 가장 강조하는 일자리 창출 등 공약 재원 마련이 잘못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를 만드는 데 문 후보는 21조 원이 든다고 했지만,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측에선 그보다 10조 원이 더 든다고 반박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도 문 후보와 마찬가지로 서민증세는 없다는 기조다. 안 후보는 공약 이행의 필요예산인 연 40조9000억 원을 확보하기 위해 먼저 대기업과 고소득자의 비과세 감면을 줄여 실효세율을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문 후보처럼 초과세수 증가분에 세출 구조조정 등 재정개혁(9조9000억 원), 부동산 임대소득 과세 강화·법인세 최고 과표구간 신설 등 공평과세 구현(12조6000억 원)으로 필요 재원을 조달한다는 구상이다. 안 후보는 19일 TV토론에서 “조세 형평을 위해 누진제가 제대로 적용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많은 비율의 세금을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그러나 안 후보도 공약 재원 논란에 휩싸여 있다. 대표 공약인 5(초등학교)-5(중학교)-2(진로·직업학교) 학제 개편 예산 소요액을 놓고 안 후보 측은 8조 원이 든다고 했지만, 유승민 후보는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에 따르면 20조 원이 든다”고 지적한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경우 “추가적인 증세 없이 알뜰한 재정운영을 통해 미래 세대에게 빚을 전가하지 않도록 방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홍 후보는 대신 연 6조 원 정도의 자연증가분에 비과세 감면 조치를 원상 회복하고, 전문직 탈세를 막겠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 국민의 35∼40%가 면세”라면서 소득세 면세자 비중도 축소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유승민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증세에 보다 ‘솔직한’ 입장을 보인다. 유 후보는 ‘中복지 中부담’ 원칙을 강조하며 사회적 합의에 따라 부자와 대기업을 중심으로 증세를 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19.4%인 조세부담률을 2021년에는 21.5%까지 끌어올리겠단 복안이다. 심 후보는 공약 이행에 필요한 연110조 원을 위해 사회복지세 신설, 사회보험 인상 등을 내세웠다.
이광재 한국 메니페스토 실천본부 사무총장은 27일 이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세금 얘기하는 순간 정치인들이 곤경에 빠지게 되니 증세 얘기를 꺼리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위기를 해결하려면 국민 부담을 늘려야 하는 게 사실이다. 후보들은 총 예산에 더해 각론도 빨리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