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역은 총 5개 노선으로 갈아탈 수 있는 역이어서,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뛰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뛰어가는 사람 뒤에 있는 누구도 이 사람이 여의도행을 타려고 뛰는지, 경의·중앙선을 타려고 뛰는지, 공항 철도를 타려고 뛰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앞사람이 뛰는 순간, 지하철에서 내리는 사람 대부분이 따라 뛰기 시작한다. 가끔은 필자도 뛴다.
사실, 앞사람을 따라 질주해서 막 들어오는 지하철을 운 좋게 탄다 해도 5분 정도 일찍 출근하는 게 전부다. 5분 먼저 출근해 대단한 일거리를 처리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앞에 있는 사람이 뛰니까 본능적으로 뛴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정치 이야기나 좋지도 않은 경제 이야기보다는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가 훨씬 편하다. 그런데 이야기의 종착점은 언제나 사교육(私敎育) 한탄으로 마무리된다. 한 달에 학원비만 100만~200만 원이 넘어간다는 사람, 이게 기본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사람. 자기가 생각해도 미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사람도 있다. 이제 겨우 세 살 된 딸아이를 키우는 필자는 요즘 같은 봄날에 웃으면서 아장아장 걷는 딸을 보고 행복을 느끼는 게 육아의 큰 부분이지만, 사교육에 힘들어하는 이야기는 대부분 공감이 간다.
우리나라 사교육은 결국 ‘지하철 환승역 심리’를 바탕으로 한다. 앞사람이 뛰니까 나도 뛰는 것이다. ‘다들 뛰니까 나도 뛰어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을 먹고 사교육 산업이 유지되고 있다. 문제는 앞사람 뒤통수를 보면서 뛰고 있지만, 제대로 된 종착점도 모른다는 점이다. 그저 불안감 때문에 더 빨리빨리 뛰려고 할 뿐이다. 영어도 해야 하고, 수학도 해야 하고, 예체능도 해야 한다.
필자는 직업이 애널리스트이다 보니 “너는 애를 어떻게 키울 거냐?”라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그럴 때마다 “제가 알면 제가 하면 되지. 그걸 왜 기다렸다가 아이에게 시키겠습니까?”라고 반문한다.
솔직히 누구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100세 인생시대, 지금 중·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사교육에 치이는 아이들과 필자가 살아 내야 할 시간은 거의 비슷하게 남아 있다. 정작 ‘답’을 알아야 하는 건 우리 직장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