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이 중소기업에 대한 부실채권만 8000억 원 가까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업성이 검증되지 않는 중소기업에 무분별하게 대출해 줬기 때문인데, 이는 정책금융이 아니라 ‘민원 금융’이란 지적이 나온다.
30일 산업은행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산업은행의 부실채권비율은 3.56%로 시중은행 평균인 0.80%의 4배 수준을 넘고 있다. 정책금융의 특성을 감안해도 여신관리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은 이런 자료에 근거한다.
산업은행의 부실채권 규모는 4조6000억 원이다.
STX조선해양, STX중공업, ㈜STX 등 이른바 기간산업으로 볼 수 있는 업종에 약 3조8000억 원의 부실채권이 있고, 나머지는 8000억 원은 중견기업에 해당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치권의 민원성 대출을 하다가 부실화된 금액이 너무 커진 것으로 보인다”며 “2000년대 초반 DJ(김대중) 정부 때부터 벤처 투자하면서 생긴 부실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했다.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역대 산업은행 회장 ‘흑역사’ = 사실 산업은행의 정치권과 얽힌 민원성 대출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이로 인해 지난 2000년 이후 9명의 산업은행 수장 가운데 이동걸 현 회장과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재임한 유지창 전 회장을 제외한 7명이 비리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기도 했다.
지난달 홍기택 전 회장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홍 전 회장은 대우조선해양이 지난 2015년 5월 회사 내 회계 비리 정황을 파악해 3조 원대 회사 손실을 공개했음에도 제대로 된 회계 조사를 하지도 않고 그해 10월 대우조선에 2조2000억 원을 지원해 산업은행에 손실을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작년 12월에는 강만수 전 회장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강 전 회장은 원유철 자유한국당(당시 새누리당) 의원의 부탁을 받고 원 의원 지역구에 위치한 회사에 490억 원의 대출을 하도록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기업은 현재 산은 구조조정실이 관리하고 있다. 구조조정실은 부실기업을 따로 담당하는 곳이다.
또 산업은행 자회사인 대우조선이 지인의 바이오업체에 거액을 투자하도록 유도하거나, 대우조선 관계사인 대우조선해양건설이 종친의 건설사에 일감을 몰아주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 등도 받고 있다. 민유성 전 회장 역시 남상태 전 대우조선 사장의 연임 로비 의혹에 연루되면서 검찰에 소환됐다.
◇대우조선 여신관리 제대로 했나 = 분식회계와 각종 비리, 대규모 손실이 가시화된 시점에서도 대다수 은행은 대우조선을 정상채권으로 분류했다. 이에 비판 여론이 일자 일부 시중은행이 먼저 '요주의'로 등급을 내렸다. 한마디로 특별 여신관리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그때도 산업은행은 뚜렷한 디폴트 조짐이 없다며 정상 채권으로 분류하다가 뒤늦게 ‘요주의’로 분류했다. 과연 산은의 여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들게 하는 대목이다.
산업은행은 2가지 방법으로 정리 절차에 들어간다. 첫 번째로는 해당 기업이 ‘신용위험평가’에서 C등급을 받게 되면 곧바로 정상화(워크아웃 내지 자율협약) 절차를 개시한다. 두 번째로는 부실여신 발생 시 구조조정실로 이관해 ‘부실기업정리추진위원회’를 거쳐 처분 또는 정상화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최근 논란이 되는 대우조선이 부실채권으로 반영될 경우 여신관리에 또 비상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 채권을 아직 부실 채권으로 분류하지 않고 있다. 대우조선에 대한 부실채권을 시뮬레이션 한 바도 없는데, 아직은 부실채권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 산업은행의 입장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대우조선에 대한 여신등급이 떨어지거나 RG(선수금 환급보증)콜이 발생해 대출로 전환될 때 부실채권의 정확한 규모를 산출할 수 있다”면서 “채권단은 대우조선의 여신등급을 ‘요주의’로 유지할 예정인 데다 P-플랜(사전회생계획제도)으로 가야 부실채권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는데, 현재 P-플랜으로 가지 않겠다는 게 채권단 방침이어서 현 단계에서 대우조선에 대한 부실채권은 0원인 것이 맞다”라고 설명했다.
은행은 대출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에 따라 대출에 대한 자산 건전성을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5단계로 분류하는데, 요주의 단계로 고정이하여신이 아니어서 대우조선의 부실채권이 없다는 것이다.
또 무담보채권을 100% 출자 전환하기로 했으나 아직 담보가치 평가가 끝나지 않아 무담보채권 규모도 파악할 수 없는 상태다. 하지만 최종구 한국수출입은행 행장이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대우조선의 회계감사보고서는 29일에 나왔으며, 실사보고서는 곧 마무리될 예정”이라고 밝혀 조만간 대우조선의 정확한 부실 정도를 알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