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스마트폰 스타트업 이센셜프로덕츠에 대한 1억 달러(약 1118억 원)의 투자 계획을 별안간 철회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개발한 앤디 루빈이 설립한 이센셜에 투자하기로 했으나 애플과 자사의 관계를 고려해 막판 결정을 뒤집었다고 20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투자가 계획대로 이뤄졌다면 이센셜 기업가치는 10억 달러로 뛰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쟁이 치열한 스마트폰 시장에서 아직 제품을 팔지도 않은 스타트업이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이례적이다. 투자자들은 모바일 OS를 거의 독점하다시피한 안드로이드를 만든 앤디 루빈의 명성에 베팅하고 있다.
이센셜은 세련된 스타일에 홈오토메이션에 최적화된 고가 스마트폰을 생산할 계획으로, 애플의 아이폰, 삼성전자 갤럭시S 등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경쟁 대상으로 삼고 있다.
당초 소프트뱅크는 이센셜에 투자하는 것은 물론 일본 이동통신 자회사를 통해 올봄 이센셜 스마트폰을 판매하는 것도 염두에 뒀다. 양사는 지난 2월 수개월의 협상 끝에 최종 투자계약에 서명하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손 회장이 이를 뒤집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와 애플의 관계가 깊어지는 가운데 애플 경쟁사에 대한 투자는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애플은 지난 1월 손정의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1000억 달러 규모 기술펀드인 ‘비전펀드’에 1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동의했다. 또 애플은 아이폰 데뷔 10주년을 맞아 올가을 기념비적인 새 모델 출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어 손 회장이 이런 점도 배려할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다.
루빈은 애플에서 직원 일부를 영입하기도 했다. 그가 세운 벤처캐피털-인큐베이터 업체인 플레이그라운드글로벌에는 제품 디지이너와 엔지니어, 하드웨어 프로그램 매니저 등 최소 7명의 애플 출신 직원이 일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아이패드 수석 설계자였던 제이슨 키츠도 이센셜 제품 대표로 합류했다.
손 회장이 애플과의 관계를 고려했다고는 하지만 갈팡질팡하는 결정으로 비판을 피할 수는 없게 됐다. WSJ도 이번 건은 손 회장의 예측할 수 없는 투자 스타일을 볼 수 있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소프트뱅크는 최근 수년간 미국 이동통신업체 스프린트를 220억 달러에, 영국 반도체 칩 설계업체 ARM홀딩스를 320억 달러에 각각 인수하는 등 과감한 베팅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한 소식통은 손 회장과 그의 인수팀이 한 번에 수십 건의 인수·합병(M&A)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인수 합의에까지 이르렀으나 결국 계약서에 서명하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고 전했다. 소프트뱅크는 사무실 공유 업체인 위워크 인수와 관련해 10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협상은 1년 넘게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