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초지종(自初至終)을 들은즉슨 한은이 지난 9일 발표한 ‘1월 말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 자료에서 상호저축은행의 1월 중 가계대출이 전월 대비 9775억 원 증가했다고 발표한 게 화근이었다. 많은 언론이 ‘은행권의 대출규제를 옥죈 결과 벌어진 풍선효과’라며 기사를 내보냈다.
다만 이는 저축은행중앙회가 종전 영리성자금으로 분류하던 영농자금 관련 대출 4692억 원을 올 1월부터 가계대출로 재분류해 보고한 데 따른 것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한은은 자료 발표 불과 몇 시간 만에 출입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로 이 같은 이유를 들며 1월 중 실제 증가액은 5083억 원에 불과하다고 알려왔다.
따지고 보면 조금만 신경 썼으면 될 일이었다. 한은은 유관기관의 자료를 받아 정리하는 수준이었고, 기술적으로도 각주하나 달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300조 원을 넘긴 가계부채 문제가 한창 우려되는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시점이 좋지 않았다. 또 한은은 국내총생산(GDP) 등 국가의 주요 통계를 작성하는 최고 기관이라는 권위를 자부한다는 점에 비춰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임에 분명하다. 한은의 권위가 아래서부터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한은 스스로도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이었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최근 한은에는 또 다른 문제로 논란이 일고 있다. 오는 23일로 예정된 거시금융안정점검 관련 금융통화위원회의 결과를 어떤 방식으로 발표할 것이냐가 그것이다. 출입기자들은 통상의 통화정책결정 금통위 기자회견처럼 총재가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소한 금통위원인 부총재 수준에서라도 기자회견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반면 한은은 현재까지도 부총재보가 설명회를 갖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중이다.
한은은 올해부터 연간 12회 개최하던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8회로 줄였다. 나머지 네 번의 회의에서는 금융안정 관련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기로 했다. 이는 한은법 개정 이후 한은에 부여된 금융안정 기능에 대해 한은이 제 역할을 하겠다는 차원에서의 결정이었다.
다만 통방 금통위 횟수 축소와 그에 따른 첫 금융안정 관련 금통위부터 총재가 기자회견을 꺼리는 모습에서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게 됐다. 우선 통방 금통위 축소를 바라보는 외부의 인식은 3억 원 가까운 연봉을 받으며 일은 않겠다는 것으로 비쳤다는 점이다. 또 사실상 통방 금통위 축소가 갑작스레 이뤄졌다는 점에서 그 배경이 여전히 미스터리이기 때문이다.
통방 금통위 횟수 축소를 금통위 내에서 가장 먼저 주장했다고 스스로 밝혔던 문우식 전 위원조차 통방 금통위 횟수 축소 결정을 3 ~ 4개월가량 앞둔 2015년 가을 “(횟수 축소는) 물 건너갔다. 후임 금통위원들이 결정하겠지만, 새로 임명된 직후부터 이를 논의하기도 힘들 것”이라고 밝혔었다. 그 무렵 당연직 금통위원인 또 다른 한 명도 “우리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하에서는 한 달 사이에도 상황이 급변한다. 금통위 횟수 축소는 선진국에서나 가능할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2016년 4월 퇴임한 4명의 금통위원과 이 총재를 제외하고 최고참이었던 함준호 위원이 당시 강력히 주장했다는 정도이다.
따지고 보면 가계부채 급증에 따른 금융안정 책임은 한은도 자유로울 수 없다. 박근혜 정부 시절 부동산 규제 완화와 이에 따른 경기 부양책에 호응하며 기준금리를 2.5%에서 1.25%까지 인하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 한은의 독립성 내지 중립성은 훼손됐고, 시장에 대한 위상은 추락했다는 점은 그간 많이 지적한 대목이다.
한은이 통방 금통위를 축소하고 내세운 명분을 위해서도, 소중한 가치로 지켜온 신뢰도를 위해서도 책임 있는 금통위원이 나설 것을 촉구한다. 조금만 신경 쓰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