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인 11일 오전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출구에서 나와 명동으로 걸어가던 김모(36) 씨는 무심코 담배를 빼 물다 주위 눈초리가 따가워 다시 담배를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금연구역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주말 아침이라 사람들이 신경쓰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 습관적으로 담배를 물었던 게 오산이었다. 그는 “유동인구가 많은 곳을 금연구역으로 정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흡연권도 보장해 줬으면 좋겠다”며 “이렇게 온통 금연구역으로 만들면 대체 담배를 어디서 피우라고 하는 것이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이어 “금연구역 확대에 비례하진 않더라도 사람이 많은 곳에는 흡연부스를 설치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항변했다.
이에 반해 김 씨 옆을 지나가던 대학생 이모(25) 씨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을 금연구역으로 정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흡연을 하면 안 된다”면서 “흡연권과 혐연권이 상충했을 때 당연히 혐연권이 우선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옆에 있던 사회 초년생 한모(29) 씨는 “금연구역이 아닌 곳에서도 흡연을 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고, 입사한 회사는 아예 흡연금지라 작년부터 전자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며 “단순히 금연구역 지정을 확대하기보다는, 흡연 가능 지역에 대한 세부적인 기준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흡연자가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흡연권과 비흡연자가 담배 연기를 거부할 수 있는 혐연권의 논란이 증폭되면서 금연구역 확대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서울시가 딜레마에 빠졌다. 서울시는 금연구역 확대 정책 기조를 이어가고 있지만, 흡연권도 보장해 달라는 흡연자들의 민원이 빗발치고 있어 몸살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금연거리를 지정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금연정책을 손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시는 아직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16일 서울시에 따르면 2011년 670곳에 불과하던 서울 시내 금연구역은 2017년 1월 1만6984곳으로 25배 이상 증가했다. 서울시가 금연구역으로 지정한 면적은 82.51㎢에 달하며, 이는 공원·광장·거리만을 산정한 수치로 각종 시설과 지하철역 출구 등을 포함할 경우 서울 면적의 3분의 1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의 금연구역 지정은 2011년 청계천과 광화문광장에서 시작됐다. 이어 같은 해 관악구가 자치구 최초로 서울대입구역 등 관내 지하철역 5곳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했다. 이듬해에는 강남대로 서쪽 지역(서초구)도 금연구역이 됐다. 이어 PC방(2013년), 식당(2014년) 등 실내흡연에 대한 중앙정부의 규제도 강화되면서 금연구역이 급격히 증가했다. 노원구의 금연구역(거리·광장·공원) 비율이 전체 면적(35.4㎢)의 39.0%로 가장 많다. 이어 서대문구(26.5%), 중랑구(21.1%), 은평구(20.4%), 종로구(19.8%) 순이다.
이에 반해 흡연구역은 서울 시내 통틀어 43곳에 불과하다. 합법적인 흡연구역 43개소는 서울시 24개 자치구 중 11개 자치구에 설치돼 있다. 송파구 9개소, 서초구 8개소, 서대문구 6개소, 중구 5개소 등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끽연가들의 흡연부스 요구 민원은 봇물을 이루고 있다.
한 시민은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나서 흡연권과 혐연권을 동시에 보장할 수 있도록 흡연부스 설치를 적극 권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시민은 지난해 6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흡연자와 비흡연자 각각 500명을 대상으로 흡연공간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흡연공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79.9%로 나타났다는 구체적인 근거도 제시했다. 당시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흡연자 77.0%가 흡연공간이 필요하다고 대답했고, 비흡연자 80.6% 또한 흡연공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애연가라고 밝힌 또 다른 시민은 “담뱃값 인상으로 세금도 많이 내게 됐는데, 어디서 피워야 할지 모르겠다”며 “정부 정책이 금연에 맞쳐줘 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흡연부스를 만들어 줘야 비흡연자들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각을 세웠다.
흡연가들의 요청에도 서울시는 “당초 2014년까지 전체 면적의 21%를 실외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방침이었다”면서 “지하철역 출입구 등을 추가로 지정한 것처럼 금연구역 확대 기조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금연정책을 확대하면서 동시에 흡연부스 설치를 권장하는 것은 모순으로 보여 입장이 애매모호하다”면서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실 가이드라인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흡연구역에 설치된 부스 유형도 서울시가 고민하는 것 중의 하나다. 서울시에 설치된 흡연부스는 개방형, 폐쇄형, 부분폐쇄형 등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옆과 뒤 벽면이 뚫려 있는 ‘개방형 흡연부스’가 28곳으로 가장 많고, 모두 막혀 있는 ‘폐쇄형 흡연부스’는 11곳이다. 일부 방향만 개방돼 있는 ‘부분폐쇄형 흡연부스’는 4곳에 설치돼 있다. 개방형의 경우 환기구가 설치돼 있더라도 담배 냄새가 주변으로 퍼질 수밖에 없고, 폐쇄형은 답답하다는 흡연자들의 불만이 많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관계자는 “유동인구·주변 환경은 물론, 흡연율 감소, 간접흡연 피해 정도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 금연구역 확대와 흡연구역 설치, 흡연부스 유형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금연정책과 관련해 갈팡질팡한 사이 자치구는 간접흡연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자체적으로 흡연부스 설치를 진행 중이다. 각 자치구는 흡연부스 설치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판단해 이 같은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