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성 검토에만 2년이 걸렸고 MOA 체결로부터는 1년이 경과한 시점에 이룬 집념의 성과였다. 해외건설협회는 이날 본계약 체결로 우리나라 해외건설 누적수주액이 5000억 달러를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한화건설이 이처럼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었던 것은 ‘제2의 중동붐을 일으키겠다’는 김 회장의 강력한 의지와 탁월한 경영 감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20차례 이상의 출장으로 반 년 이상을 이라크에 상주하면서 실무를 챙긴 김현중 당시 한화건설 부회장을 비롯한 관련 임직원과 협력업체들의 열정이 빚어낸 성과였다. 특히 지식경제부와 국토해양부 등 대한민국 정부를 비롯해 해외건설협회,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의 적극적인 지원과 신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문제는 이라크라는 지역적 위험 요인과 두바이, 카자흐스탄 등 해외 주택사업의 무수한 실패 요인에 따른 리스크였다. 이미 세계 130여 개 건설업체들이 포기했던 프로젝트였지만 한화건설은 수의계약으로 사업 주도권만 쥔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안전 문제는 늘 걸림돌이 됐다. 김 부회장을 비롯한 실무진들은 이라크 출장 때마다 안전에 신중을 기해야만 했다. 이라크를 처음 방문했을 때는 장갑차가 맨 앞에 서고 무장 경호차량이 그 뒤를 이으며, 무장경호원이 탑승한 방탄차에 탑승해 겹겹의 호위를 받곤 했다. 요즘도 이라크에 입국하면 방탄조끼를 입고 방탄차에 탑승해 전문 경호업체의 보호를 받지만 2년여 전보다 많이 안전해진 상태다.
안전과 관련한 에피소드라면 김 부회장이 새벽녘까지 이어진 늦은 회의를 마치고 현지 캠프에서 자고 있는데 인근에 박격포가 떨어졌을 때를 꼽을 수 있다. 폭격이 있을 시에는 캠프 안 모든 인원은 즉시 방공호로 피해야 하는데, 김 부회장은 너무 피곤했던 까닭에 아무일 없이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 이후 김 부회장은 포탄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의 소유자로 소문이 났고, 발주처와의 협상에 간접적인 도움이 됐다.
본계약 체결까지 김 부회장을 비롯한 실무진은 20차례에 걸쳐 이라크를 방문해 계약조건 변경과 협의를 진행했다. 한번 이라크에 들어가면 통상 1주일을 체류했으니 여행금지 국가인 이라크에서 6개월 정도를 산 셈이다.
이 같은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한화건설은 결국 건설업계의 역사적 수주라는 성과를 거두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