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금] 사드·남중국해…도전에 직면한 시진핑 외교

입력 2016-07-2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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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률 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명실상부 주요 2개국(G2)으로 위세를 과시하던 중국이 국내외에서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더 이상 고도성장의 신화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외적으로도 미국의 압박 공세가 강도를 더해 가고 있다. 특히 그동안 시진핑 주석이 직접 주도하며 성과를 과시해왔던 외교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시진핑은 2013년 집권 이후 매년 전 세계를 대상으로 역대 어느 중국 지도자보다도 활발한 정상외교를 주도해 왔다. 그 결과 중국 국내의 정치·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의 중국의 입지와 위상은 점점 높아졌다. 시진핑이 주도하는 외교 행태를 포괄적으로 ‘시진핑 스타일(習式) 외교’라고 일컬을 정도로 외교 방식도 특징적이었고 외교 성과 또한 두드러져 보였다.

그런데 그 화려했던 시진핑 외교 성과에 손상을 줄 수 있는 사건이 연이어 불거졌다. 한·미 양국이 지난 8일 주한미군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한 데 이어 12일에는 남해 구단선(九段線)에 대한 중국의 역사적 권리 주장이 근거가 없다는 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결이 나왔다. 두 사안 모두 시진핑이 직접 공개적으로 강경하게 반발해온 것임에도 중국의 의사에 반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두 사안은 한반도와 남중국해라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 전개됐고 내용도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우선 관련 당사국인 한국과 필리핀은 모두 아시아에서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이며, 두 사안 공히 중국이 강력하게 반발해온 쟁점이다. 중국의 거친 반발이 사실상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도 유사하다. 중국은 남중국해 문제는 영유권 문제이고, 이는 직접 당사국인 자국과 필리핀이 해결할 문제라고 주장해왔다. ‘비당사국인 미국의 개입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사드 배치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국 측이 사드 배치에 대해 북핵 억지를 위한 불가피한 결정으로,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수차례 설득해도 중국은 믿을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자국을 견제하기 위해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하는 것이고, 한·미·일 간의 미사일방어체제(MD)를 구축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라는 판단에 추호의 의심도 없다.

요컨대 중국은 미국이 동맹국인 필리핀과 한국을 앞세워 자국의 부상을 견제하거나 포위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이 PCA 발표 직전에 이루어지면서 이러한 중국의 의구심을 입증시킨 셈이 됐다.

강대국 간 세력 경쟁은 사실의 문제이기에 앞서 인식의 문제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두 사안은 기성 강대국 미국과 부상하는 강대국 중국 간의 세력 판도를 둘러싼 거대 게임의 연장선상에서 전개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특히 두 사안 모두 이례적으로 시 주석이 직접 전면에 나서 중국의 입장을 수차례 역설해왔다는 점으로 인해 문제가 복잡해질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권위주의 체제의 특성상 시 주석의 공개 주장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더욱이 최근 중국 내에서 시 주석이 소위 ‘정층설계(頂層設計:Top-level design)’를 제기하며 권력 집중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상황이어서 ‘시진핑 발언’ 은 시 주석 본인에게는 물론이고 실무 관료들에게도 외교적 유연성을 제약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는 결국 사안 자체도 중요하지만 ‘시진핑 발언’의 무게와 유연성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인데, 시 주석 스스로가 해결의 열쇠를 제시해야만 비로소 변화의 모멘텀을 얻을 수 있다. 작금의 중국 국내 정치 현실을 감안할 때 권력구조 내의 어느 누구도 쉽게 시 주석의 공개적 발언에 대한 변화의 필요성을 건의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중국의 강경한 공세적 외교가 지속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런데 현재의 복잡한 국면을 현미경이 아닌 망원경으로,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조망해 보면 중국이 강경 드라이브를 지속할 것이라고만 보이지는 않는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시 주석은 취임과 함께 소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중국의 꿈으로 제시하고 중국 부상에 대한 희망을 인민들에게 현실적으로 인식하도록 하면서 공산당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미국에는 신형 대국 관계를, 주변국에는 운명공동체론을, 그리고 이러한 추상적 외교 레토릭의 구체적인 추진 전략이자 구상으로는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제시했다. 이러한 일련의 외교적 수사와 구상들은 결국 중국의 부상이 주변국이나 국제사회에 위협이나 도전이기보다는 기회와 혜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부각시키고자 한 것이다.

시진핑 정부는 이미 ‘두 개의 백년’ 구상을 통해 중국의 부상이라는 꿈의 실현을 2049년에 맞추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중국은 이미 2000년대 초 강대국 부침의 역사에 대한 연구를 통해 조급한 부상보다는 안정적이고 지속성 있는 부상 플랜을 준비해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성 강대국인 미국의 견제와 그에 따른 갈등은 불가피하다는 점도 충분히 예견했다. 다시 말해 중국에 얼핏 충격적인 사건으로 비쳐지는 남중국해에서의 ‘패소’와 한반도의 사드 배치 결정은 사실상 미·중 경쟁 구도에서 충분히 예상된 사안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남중국해에서의 판결이 자국에 불리하게 나올 것을 예견해 ‘백서’를 발간하는 등 다양한 대응을 준비해왔다. 사드 배치에 대해서도 지난 2~3년간 지속적으로 논쟁을 벌여왔다.

또한 미국과의 경쟁과 갈등이 반드시 중국에 부정적 결과만 초래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중국은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미국과 경쟁하면서 사실상 세계에서 미국에 맞먹는 위상과 영향력을 갖고 있는 국가로 부상했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의 재균형 전략에 보다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방안을 강구, 자신의 강점인 경제력과 경제적 수단을 십분 활용해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경제 네트워크를 확장해가면서 자신의 위상과 영향력을 점진적으로 확대해가고 있다. 특히 아·태지역 내 미국의 5대 동맹국 중 필리핀을 제외한 4개국이 자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라는 특별한 상황을 적극 활용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군사 안보 영역에서는 미국과의 직접적 경쟁과 충돌은 현재 자국 내 정치·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하에 최대한 우회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중국은 남중국해를 통해 역설적 상황을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미국의 개입을 막기 위해 단호한 입장을 취하면 취할수록 분쟁 상대 국가인 베트남, 필리핀 등은 더욱 미국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미국은 개입의 빌미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중국은 양보하기 어려운 영유권 문제에 대한 원칙적 입장은 고수하겠지만 필리핀을 포함해 아세안 국가들에 대한 다양한 유인 수단을 제시하는 매력 공세도 병행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중국은 일본과의 동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도 초기의 강경일변도에서 1여 년 만에 갈등을 유보한 사례가 있다.

그리고 두 사안에 대한 ‘시진핑 발언’ 이 주는 무게감이 적지 않지만 역설적으로 그가 직접 새로운 ‘전환의 발언’을 제시한다면 의외로 쉽게 흐름을 반전시킬 수도 있다. 중국이 직면한 현실에서 미국과의 세력 경쟁이 도를 넘어서 한국, 필리핀, 베트남과 같은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될 국가들이 늘어나는 것은 중국의 장기적 부상 일정에 좋은 현상만은 아닐 수 있다. 미·중 양국은 동맹이 되든 동반자가 되든 이들 국가에 대한 관리 부담이 증대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이들 ‘낀 국가’들이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연대를 구성해 미·중 경쟁의 새로운 변수로 대두될 가능성도 있다. 비록 현실은 얼핏 비관적으로 보이지만 이런 때일수록 강대국 정치의 속성을 큰 흐름에서 조망하는 새로운 시야도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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