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며 지난해 굴지의 대기업 간 치열한 입찰경쟁이 벌어졌던 서울 시내 신규 면세점들이 오픈 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4곳 모두 극심한 판매 부진으로 영업 적자 상태다. 특허권 획득 당시 너나 할 것 없이 사업 초반 1조 원 매출 달성을 외쳐대던 신규 면세점들의 당찬 기세는 찾아볼 수 없다. 실적 부진으로 이들이 특허권을 획득하기 위해 공약으로 내건 상생 및 사회공헌 활동 계획도 달성하기 힘들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올해 말 서울 시내 면세점 4곳을 추가할 방침이다. 지난해 11월까지 6개에 불과했던 서울 시내 면세점은 1년 만에 두 배가 넘는 13개로 불어나게 돼 더욱 치열한 생존 경쟁이 펼쳐질 전망이다.
◇HDC신라ㆍ한화ㆍ신세계ㆍ두산, 모두 적자 = 신규 티켓을 거머진 면세점들이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순차적으로 개장한 가운데 신규 면세점들이 지난 1분기 일제히 적자를 기록했다.
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는 올해 1분기 면세점 사업에서 매출 437억 원, 영업손실 87억 원을 기록했다.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는 지난해 12월 갤러리아면세점63 영업을 시작했으며, 제주국제공항에서도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용산 신라아이파크면세점을 운영하는 HDC신라면세점(호텔신라와 현대산업개발의 합작 법인)은 개장한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 말까지 매출 168억 원, 영업손실 53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 5월에 문을 연 신세계디에프의 신세계면세점 명동점과 두산그룹의 두타면세점도 적자 상황은 마찬가지다.
신라아이파크면세점을 제외한 3사의 일 평균 매출은 1억~6억 원가량에 불과하다. 이 수준이라면 이들이 당초 내세운 매출 목표액 달성은커녕 절반 수준도 못 올릴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신세계는 명동점의 개점 첫 1년간 매출 목표액을 1조~1조5000억 원으로 잡았다. 그러나 현재 일 매출 수준인 6억 원으로는 연 매출액 4000억 원 달성도 힘들다. 목표액 1조 원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하루 40억 원의 매출을 올려야 한다.
갤러리아면세점63도 신세계와 비슷한 수준의 일 평균 매출액을 올리고 있다. 두산그룹 면세점도 현재 매출액이 당초 계획의 절반에도 못 미쳐 3년 안에 매출액 1조 원 목표 달성은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업계 관계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브랜드 유치, 입지적 장점 등의 변수에 따라 성적표가 결정될 것”이라며 “올해 모두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내년 말이면 도태되는 업체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공헌 약속 공약(空約) 가능성 커 = 서울 시내 황금알 면세점 운영권을 따내기 위해 각 기업이 거액의 베팅을 내건 사회공헌 공약(公約)으로 승부수를 던진 까닭에 이 같은 공약이 제대로 지켜질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매출 부진으로 공약 실천 가능성이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신세계그룹은 남대문 소상공인들을 위해 3년간 약 15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신세계는 ‘명동-신세계면세점-남대문시장-남산’으로 이어지는 ‘관광 올레길’도 구축할 예정이다. 특히 사회공헌에만 2020년까지 27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두산은 면세점 영업이익의 최소 10%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5년간 영업이익은 5000억 원 수준으로 추산했는데, 10%인 500억 원을 내놓겠다는 계획이었다. 또 별도 재원을 들여 중소·중견기업, 협력사, 중견면세점 등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화갤러리아는 2011년부터 우수 협력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운영해온 금융지원 프로그램 ‘동반성장상생펀드’를 현재 150억 원에서 200억 원으로 늘린다고 했다. 또 여의도 63빌딩을 면세점 입지로 내세운 만큼 ‘갤러리아 63플랜’을 사회환원책으로 제시했다. 갤러리아 63플랜은 향후 면세점 수익을 63빌딩 인근 여의도·영등포 등지에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HDC신라면세점은 구체적인 사회 환원 금액을 밝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개장 6개월간의 실적이 꼬꾸라진 현실에서 이들의 공약이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익명을 요구한 신규 면세점의 한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 사회공헌 공약 이야기를 꺼낼 분위기가 아니다”라며 “개장을 위해 기업마다 초기 투자비를 과도하게 쏟아부은 데다 극심한 매출 부진으로 공약을 지키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도 “하반기 신규 특허 추가로 경쟁이 극심해져 수익 창출이 힘든 상황인 데다 여행사 수수료 인상도 부담이 되고 있다”며 “각 업체가 내건 공약이 제대로 지켜질지 두고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