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로 이탈리아 은행권 부실의 심각성이 드러나면서 이탈리아가 유럽 금융시장 부실의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다.
4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브렉시트 여파로 인한 유럽 금융권의 피해가 이탈리아의 부실대출 문제로 시장의 예상보다 더 즉각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WSJ에 따르면 현재 이탈리아 은행의 대출 가운데 17%가 부실대출이다. 이는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은행들의 부실대출 비율(5%)을 크게 뛰어넘는다. 비중만큼이나 규모도 심상치 않다. 이탈리아 시중은행의 부실대출 총액은 3600억 유로로 추산된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4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 상장된 은행의 악성 대출의 절반 가까이 이탈리아 은행이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브렉시트 결정으로 이탈리아 은행의 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이라는 데에 있다. 브렉시트 이후 유럽 경제권의 성장둔화, 부실대출 증가, 은행의 수익 악화 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탈리아의 부실대출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주 폭락으로 고객들이 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실제로 브렉시트 결정이 난 후 이탈리아 은행들의 주가는 3분의 1이 폭락했다.
국제은행 규제에 따라 글로벌 중요은행으로 분류된 이탈리아 은행은 ‘우니 크레디트’ 한 곳밖에 없지만, 브렉시트로 은행들에 대한 압박이 커지면서 이탈리아의 안정성은 물론 EU의 안정성마저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로렌조 코도노 전 이탈리아 재무부 심의관은 “브렉시트는 이탈리아에 완전한 은행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면서 “만약 브렉시트로 인한 금융시장 문제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는다면 유로존이 붕괴할 위험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납세자가 아닌 채권자가 구제자금을 대야 한다’는 EU의 규제에도 필요하면 국민 혈세로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EU가 정한 규제와 무시하고 자국 방식대로 부실대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EU를 규정을 어기고 이러한 방침을 관철한다면 가뜩이나 브렉시트 여파로 크게 흔들린 EU 체제와 규제에 대한 신뢰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는 더욱 커지게 된다.
이탈리아 외에도 부실채권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포르투갈 은행권도 유럽 금융위기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스페인의 방코포풀라르에스파뇰도 부동산대출 부실로 손실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달 25억 유로의 유상증자를 했다가 주가가 급락하는 등 유럽 은행권 전반에 부실이 산적해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