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국회 선진화법'으로 불리는 개정 국회법이 위헌이라며 제기된 권한쟁의 심판에서 각하 결정했다. 심판을 청구한 국회의원들이 표결권 등을 침해당한 것으로 볼 수 없는 만큼 위헌인지 판단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취지다.
헌법재판소는 26일 여당의원들이 국회의장과 기획재정위원장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심판 사건에 대해 재판관 9명 중 5명의 의견으로 각하 결정했다. 나머지 재판관 2명은 기각, 1명은 인용 의견을 냈다.
'국회 선진화법'으로 불리는 개정 국회법은 '날치기 통과'를 막기 위해 도입됐다. 국회의장이 법안 심사기간을 지정하기 위해서는 국가비상사태 등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여·야 합의를 해야 한다. 이 절차가 없으면 직권상정을 할 수 없다. 또 안건을 신속처리 대상으로 삼기 위해서는 재적의원 과반수 동의와 재적 5분의 3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국회 과반이 의사를 결정하더라도 합의 없이는 사실상 본회의 의결이 불가능하도록 해 다수결 원칙에 반한다는 주장도 제기돼 왔다.
헌재는 여당 의원들이 국회법 개정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률의 제정이나 개정이 잘못됐다고 다투는 권한쟁의 심판에서 국회는 심판을 당하는 대상이지,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정 국회법에서 신속처리안건 지정 요건을 가중한 것이 위헌인 지에 대해서도 판단을 하지 않았다. 나성린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안'을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하자 심판을 냈다.
헌재는 나 의원의 청구가 상임위 재적 과반수의 서명을 받지 못한 이상 표결권을 침해당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설령 헌재가 신속 처리 안건을 가중한 국회법을 위헌이라고 선언하더라도 나 의원이 상임위원장에게 지정 요구를 할 수 없는 이상 국회의원으로서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헌재는 국회의장이 이 법안을 직권상정해달라는 새누리당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권한쟁의로 다툴 대상이 안된다고 봤다. 개정 국회법에서 정한 '심사기간 지정' 요건 조항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제한하는 것이지, 국회의원 개개인의 표결권을 제한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진성·김창종 재판관은 "심판 청구 자격은 갖췄다"고 판단했다. 국회의장이 안건에 대해 심사기간을 정하고, 심사기간이 지나면 안건을 본회의에서 표결하도록 정한 것은 의원의 표결권을 사실상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게 두 재판관의 의견이다. 이 재판관 등은 그러나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요구에 따라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 가능하도록 하는 규정을 두지 않은 것을 위헌으로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조용호 재판관의 경우 개정 국회법에 대해 "국회 내 다수파와 소수파 사이에 의견이 대립되는 논쟁적 안건, 위원회 단계에서 협의 또는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해 그에 대한 심사·표결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는 교착상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위헌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