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햄릿’. 연극배우 김동원(1916.11.14~2006.5.13)을 그렇게들 부른다. 일생 동안 ‘햄릿’ 역만 네 번 했으니 그럴 수 있을 게다.
그가 햄릿을 처음 연기한 것은 1951년 피난지 대구 키네마 극장에서였다. 한국 최초로 햄릿을 올린 이 무대에서 그는 명연기를 펼친다. 처음엔 배역을 거절했다고 한다. 부담스러워 그랬을까. 어쨌든 허락하고 나니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은 겨우 7일. 사흘 밤을 새워 대본을 외우고 무대에 선다. 전쟁통임에도 3000~4000명이 몰렸을 만큼 ‘햄릿’은 크게 히트를 한다. ‘한국의 로렌스 올리비에’라는 별칭은 이때 나온 것이다. 이후 57년 극단 신협의 무대, 62년 드라마센터 개관 기념작, 85년 호암아트홀 개관 기념작 등에서도 ‘햄릿’을 열연했다.
김동원은 배재고보에 다니던 1932년 ‘고래’에 출연하면서 연극과 인연을 맺는다. 당시 유치진이 지도했는데, 그는 후에 유치진 작품의 단골 주인공이 된다. 연극이 천직임을 깨닫게 된 그는 1934년 일본 니혼(日本)대학 예술과에 입학한다. 이때 일본에 유학 중이던 평생 절친 이해랑(李海浪) 등과 함께 동경학생예술좌를 조직한다. 창립공연 ‘소’와 ‘나루’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눈을 뜨게 된다. 1938년 귀국 후엔 극단 극예술협회, 극단 신협 등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주인공의 길을 걷는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스탠리, ‘세일즈맨의 죽음’의 윌리 로먼,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 등의 역을 맡아 열연했다.
1950~1960년에는 ‘여성의 적’, ‘춘향전’ 등의 영화에도 출연했다. 하지만 그는 “성취감을 느낀 영화가 없었다”고 할 정도로, 연극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1994년 ‘이성계의 부동산’을 끝으로 연극 무대에서 은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