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모(39)씨는 유류비 부담에 올해 초 기아자동차 전기차 ‘쏘울EV’로 차량을 바꿨다. 지난 주말 어버이날을 앞두고 경기도 파주 부모님 댁을 다녀오다가 큰 낭패를 봤다. 부모님 댁에서 출발한 지 얼마 안 돼 확인한 계기판의 주행 가능 거리는 25km였다. 서울 영등포 자택까지 가기에는 남은 배터리 양이 턱없이 부족했다. 급하게 충전소를 찾던 이씨는 파주에는 전기차 충전소가 1곳밖에 없다는 사실에 분통을 터트렸다.
정부의 오락가락 전기차 정책에 소비자들이 단단히 뿔이 난 모양새다. 가장 큰 불만은 충전소 인프라 부족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급속 충전시설은 공공 337개에 민간까지 포함해도 400개 남짓이다. 정부는 올해 전기차 8000대 보조금과 충전기 150대 설치에 15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할 방침이다. 그러나 해외의 전폭적 지원과 비교하면 너무 미약한 수준이다. 국내 전기차 충전시설은 주유소의 3%에 불과하다.
◇전기차 확산한다면서 충전소 유료화? = 테슬라의 ‘반값 전기차’ 모델3가 전 세계적 돌풍을 일으키자 국내에서도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충전시설 부족과 보조금 문제 등으로 선뜻 구매에 나서는 소비자를 찾기란 쉽지 않은 형국이다.
환경부는 최근 전기차 급속 충전소 유료화 정책을 내놨다. 지난달 11일부터 1킬로와트시(kWh) 충전 시 313.1원을 징수키로 한 것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기차 소유자는 연간 주행거리 1만3378km 기준으로 월 평균 5만8000원의 충전료를 부담해야 한다. 같은 주행거리 기준 휘발유차(13만2000원)·경유차(9만4000원)의 절반 이하 수준이지만, 그동안 공짜였던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부담이다.
환경부의 충전소 유료화 직후 전기차 인터넷 카페에선 소비자들의 불만이 줄을 잇고 있다. 예컨대 4190만원짜리 SM3 ZE는 한 번 완충했을 때 최대 135㎞를 달린다. 6월 출시 예정인 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전기차)은 4000만원대 가격으로, 1회 완충 시 180㎞까지 달릴 수 있다.
업계에서도 가뜩이나 초보 수준인 전기차 시장이 이번 정책으로 더 위축되는 분위기라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환경부는 충전 인프라스트럭처 구축에 민간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라지만 시장이 성숙하기도 전에 유료화한 것은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충전소를 찾기도 힘든 판에 돈까지 내라고 하는 것은 전기차를 사지 말라는 소리밖에 안 된다”고 강조했다.
◇보조금 들쭉날쭉…일원화 절실 = 지역마다 차별화된 전기차 보조금 또한 갖가지 문제를 낳고 있다. 전기차는 가솔린·디젤 차량과 달리 정부 보조금이 붙는 친환경 차량이다. 그러나 보조금이 지역마다 다르다. 기본적으로 전기차 구매자는 1200만원의 정부 보조금을 받지만, 지차제가 주는 추가 보조금은 지역에 따라 들쭉날쭉이다.
전남 순천시는 전기차를 사는 시민에게 800만원의 추가 보조금을 지급한다. 올해 6월 출시 예정인 현대차의 전기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기본 모델 가격은 4000만원. 순천시민이 아이오닉 일렉트릭을 구입하면 정부 보조금과 지자체 보조금을 받아 반값인 2000만원에 살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충북 청주시, 진천군, 전남 광양시는 지자체 보조금이 없다. 이 지역 주민들이 ‘아이오닉 일렉트릭’을 구입하려면 2800만원을 내야 한다.
여기에 전기차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 또한 소비자들의 불만의 대상이다. 여러 장의 동의서를 작성해야 하고 충전시설 인프라 부족으로 소비자는 집에 충전기를 설치해야 한다. 주차장이 있는 단독주택이 아니면 충전시설 설치는 개인이 아닌 지역주민의 문제로 확대된다. 또 아파트 거주자는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충전기 설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등 여러가지 절차를 완료해야 한다.
전기차 소유권을 포기하면 보조금을 반환해야 하는 조항도 부담스럽다. 전기차는 한 번 구입하면 최소 2년 동안 다른 사람에게 소유권을 이전할 수 없다. 이 조건을 지키지 못하면 최초 구매 시 받았던 보조금을 반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