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는 사생아였다. 아버지가 피렌체의 유명한 공증인이었지만 어머니 고향인 시골 마을 빈치로 보내져 할아버지와 외삼촌 밑에서 자랐다. 이것이 오히려 그에겐 축복이었을까. 외삼촌은 소년 다빈치를 산으로 들로 데리고 다닌다.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꽃, 벌레, 별, 바람 등 자연이 준 선물을 예사롭게 보지 않고 관찰했고, 반드시 기록했다. 자연을 관찰하는 힘. 르네상스의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4.15~1519.5.2)를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중세시대의 그림을 본 적이 있는가. 그림에 나타난 인물들은 평면적이고, 인체비율도 무시되어 있다. 현실적인 것보다는 종교적인 위엄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르네상스 시대에는 원근법을 사용해 공간감을 표현한다. 구체적으로 사실적인 묘사를 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인간 이성의 발현이기도 했다. 하지만 주로 선(線)을 이용해 공간을 표현하다 보니 기하학적 요소가 도드라져 자연스러움이 떨어졌다.
다빈치는 자연을 관찰하면서 전경 중경 후경, 즉 깊이에 따라 색채가 달라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림을 그릴 때 색채의 변화로 공간의 깊이를 달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발견이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위대한 발명은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지 않던가. 우리가 보고 있는 풍경화나 정물화가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보인다면 그것은 모두 다빈치 덕이리라. 다빈치에게 불완전한 ‘르네상스의 이성’을 완성했다는 상징성이 따라다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다빈치의 불후의 대표작 ‘모나리자’는 그의 이러한 관찰이 진화한 결정체이다. 분명하지 않은 선으로 흐릿하게 처리한 모나리자의 미소는 무한한 깊이를 선사한다. 세기를 넘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느끼게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