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은 시대를 반영한다. 현대극이든 사극이든 극 중 인물이 입는 의상은 당시 보통의 사람들이 입던 옷과 일맥상통한다. 이 때문에 시대극 또는 사극에서 의상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영화 ‘명량(2014)’은 이순신 장군의 갑옷과 평상복으로 위엄있으면서도 검소한 삶을 표현했다. 영화 ‘협녀, 칼의 기억(2015)’은 화려하고 웅장했던 고려의 예복을 재현했고,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2015)’는 조선 초기 의상과 건축물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호평을 받고 있다.
역사 속 의상을 현대에서 재현하는 것은 철저한 고증과 기술력이 접목된 결과다. 2015년 개봉해 127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암살’은 순제작비 180억원이 투입된 대작으로 1930년대 경성과 상하이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내 눈길을 끌었다. 류성희 미술감독은 “영화를 통해 경성 서민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주유소 골목부터 상류층의 화려한 삶을 고스란히 담아낸 미츠코시 백화점까지 관객들이 직접 볼 수 없었던 당시의 다양한 공간을 재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상경 의상감독은 “‘중국 옷은 중국에서 생산된 것으로 사용한다’는 것이 원칙이었다. 지역이 주는 정서가 배우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선시대 왕실의 의복을 만들던 공간 상의원을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 ‘상의원(2014)’은 순제작비 72억원 중 약 10억원을 의상 제작비에 할애했다. 종류만 해도 100여벌이 넘는 의상을 만들기 위해 50여명의 인원이 뭉쳤고 약 6개월에 걸친 고증과 연구가 필요했다. 주연배우 박신혜가 착용한 가채의 무게는 무려 20kg. 이는 기존 사극에서 사용한 5kg보다 무려 4배나 무거운 것이었다. 왕비의 진연복은 15겹의 원단을 겹쳐 만들었으며 그 무게는 40kg이나 됐다.
‘상의원’의 채경선 미술감독은 “남아 있는 기록과 문서를 바탕으로 이미지를 상상해야 했기 때문에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또 유청 소품감독은 “저명한 궁중의상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연구하며 완벽한 고증을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상은 꼭 시대적 배경에만 초점을 맞춰 제작되지 않는다. 콘텐츠의 완성도를 위해 캐릭터와 줄거리도 무시할 수 없는 것. 여기에 액세서리도 중요하다. 장신구부터 넥타이, 신발까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 벌의 옷이 제작된다. 짧게는 이틀에서 길게는 한 달 이상 소요된다.
이 같은 노력에도 극 중 의상은 다시 사용되기 어렵다.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의 제작에 참여한 한 의상 디자이너는 “사극에서 사용되는 의상은 대부분 일회성이다. ‘명량’ 이순신의 갑옷은 오롯이 배우 최민식의 신체 사이즈와 극 중 역할에 맞게 제작되었기 때문에 다른 작품에서 다른 배우가 사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디자인한 의상을 보관하는 의상감독도 있지만 극히 드물다”면서 극 중 의상이 보존되지 않는 점을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