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대표는 1984년 대우증권에 입사해 32년째 ‘증권맨’으로 일하고 있다. LG선물과 대우증권 사장을 지낸 뒤 2008년 토러스투자증권을 설립해 7년 넘게 사령탑을 맡고 있다. 대우증권 CEO 시절 취임 3개월 만에 위탁매매를 업계 1위로 만드는 등 전성기를 이끌었다.
현재 국내 최고 은퇴교육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강창희 대표는 대우증권 출신으로 현대투신운용 사장과 굿모닝투신운용사장을 지내며 펀드업계 맏형, ‘여의도 소군자’로 불린다. 이후 미래에셋 부회장·미래와금융 연구포럼 대표를 역임하며 10년 이상 노후설계교육과 투자교육 전문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며 지난해 9월부터 트러스톤연금포럼 대표를 지내고 있다.
이에 이투데이에서는 자본시장 60주년을 맞아 증권업계와 운용업계에서 각각 30년 이상 최상의 자리를 지켜온 이들에게 그간 자본시장에서 겪은 소회와 향후 과제 등을 짚어 보는 지상 좌담회를 마련했다.
△그동안 금융투자 업계에 재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건이나 일화, 또는 제도적 변화는?
손 대표 =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09년 제정된 자본시장통합법이다. 영국의 금융 빅뱅 이후 국내에서도 자본시장법이 시행된다면 선진금융국으로 크게 도약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다만, 금융투자업계가 숙원사업으로 꼽은 기대치만큼 크게 변화된 점이 없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과정에서 과거 증권업협회, 선물업협회, 자산운용협회 등 각각 따로 업권을 대표하던 협회들이 하나로 뭉쳐져 금융투자협회가 탄생했다.
강 대표 = IMF 위기 이후 주식시장 완전 개방이 가장 큰 변화로 꼽힌다. 국내 주식시장의 주가 형성 요인 중에 외국인 투자가의 관점이 이때부터 가장 큰 변수 중 하나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자본시장에 처음 몸 담았던 시기와 현재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반면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손 대표 = 가장 크게 체감하는 점은 증권사 자기자본 규모의 차이다. 1980년대 중반 업계 최고였던 대우증권의 자기자본 규모가 불과 300억원이었는데, 지금은 100배가 넘는 4조원을 웃돌고 있다. 수익성 측면에서도 1980년대 몇 십억원 규모였던 당기순이익이 현재 몇 천억원을 오간다.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다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증권업계의 글로벌 위상은 과거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나 대형 기업들은 지난 30년에서 40년간 비약적인 발전을 거뒀지만, 증권산업은 과거 대비 위상이 오히려 약화했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대우증권이 중국의 최대 증권사인 중신증권보다 시가총액 등에서 규모가 훨씬 컸지만, 지금은 중신증권이 대우증권의 시가총액을 4배에서 5배 앞지르고 있다.
강 대표= 1973년 금융투자업계에 입문할 당시 증권회사의 설비는 전화, 주화, 볼펜뿐이었으나 지금은 IT 중심의 거대 장치산업으로 바뀌어 있다. 당시엔 실물 경제와 유리된 일부 투기꾼 중심의 투기 시장이었으나 지금은 실물 경제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실물 경제의 거울로 바뀌었다.
△우리 자본시장의 가장 큰 변곡점은 언제였다고 생각하나? 또 당시 어떻게 대처했는지?
손 대표 = 1989년 4월 1일 코스피 1000P을 돌파한 시점이다. 당시 1980년대 중반 전두환 정권을 지나면서 국내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12~13%를 기록하는 경기 활황 덕분에 증시환경이 사상 최대 호황이었다.
대우증권의 자기자본을 일례로 들면 300억원 규모에서 1989년, 불과 1년 만에 1조원을 돌파했다. 대우증권의 시가총액이 1조5000억원을 기록, 삼성전자(1조4000억원)를 한 단계 앞선 시기였던 것이다.
증권사는 수신 기능이 없어서 자기자본이 매우 중요한데, 그 당시 효율적인 영업 기반을 구축했다면 지금보다 자기자본 규모가 더 커지며 증권업계의 선진화가 가속화됐을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말 호황을 거친 증권사들 대부분이 급격히 자기자본이 불자 전국 점포의 자가화 등 부동산 투자에 치중하거나 대형기업을 상대로 지급보증 업무를 시행했다. 이 과정에서 고려합성그룹, 한보그룹 사태 등이 나면서 지급보증했던 증권사들이 수천억원 규모의 손해를 입었다.
1990년대 중반 일본에서 돌아와 대우증권 기획실장을 하면서 앞서 언급한 자기자본 대비 위험 상품을 줄이는 구조조정과 업계 최초로 리스크관리 체제를 정비했다. 결국 이 같은 선제적인 작업으로 IMF위기를 잘 견딜 수 있었다.
강 대표 = 2004년부터 2007년까지는 일반투자자들에게 주식 투자는 전문가가 운용을 대신해주는 펀드 투자로 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이른바 ‘펀드 투자 대중화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일례로 노후 대비 등 펀드 투자는 확실한 투자 목적을 갖고 장기, 분산 투자해야 한다는 투자 원칙을 알리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만족할 만한 효과가 없었다. 단기 시황에 따라 사고파는 투자 행태는 거의 바뀌지 않고 펀드 대중화의 꿈도 멀어져 갔다.
그러나 2005년 퇴직연금제도의 도입은 펀드시장 대중화의 호기였다. 미국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저축의 시대에서 투자의 시대로 이행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 펀드 시장과 DC형 퇴직연금 시장이었다. 한국은 전체 퇴직연금 가입자 중 DC형 퇴직연금 가입자의 비중이 2014년 말 현재 40%를 넘었고 2024년에는 전체 퇴직연금 자산 중 DC형 자산 비중이 60% 넘어설 것으로 예상 됨에도 펀드 시장 확대로는 어려워 보인다. 투자지식이 전혀 없는 가입자들은 원리금 보장 상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손 대표 = ‘증권업계의 대부’로 꼽히는 삼보증권 창업자인 강성진 회장이다. 인품, 카리스마, 경영능력 등 국내 증권업계 역사상 가장 선후배들에게 존경을 받고 본보기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1964년 삼보증권을 인수한 후 업계 최고의 증권사로 키웠고, 삼보증권은 1983년 당시 대우그룹의 동양증권과 합병해 현재 대우증권이 됐다.
강 대표 = 1970년대 한국거래소 개혁을 주도했던 김용갑 이사장이다. 김 이사장 주도 하에 증권거래제도, 상장제도, 증권금융제도를 개혁했기 때문에 증권시장이 실물경제와 유리된 ‘투기 시장’에서 실물 경제를 반영하는 기업자금 조달시장으로 바뀔 수 있었다.
△최근 자본시장이 직면한 위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또 어떤 해결 방안이 있는지 조언해준다면.
손 대표 = 현재 증권사들은 수익을 창출할 먹거리가 없다. 그동안 전통적인 수익산업으로 꼽히는 브로커리지, 선물옵션, ELW 등이 대부분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전통적 수익산업이 조 단위로 창출돼야 증권업계가 선순환이 된다. ELW와 더불어 선물옵션도 양도소득세가 도입되고 증거금률 인상 등 개인투자자들의 참여를 제어하면서 크게 위축됐다. 수익증권 판매시장도 대부분 은행권이 독식하다 보니 증권사들이 설 길이 없다.
증권사들의 생존을 위한 해결 방안은 정부나 금융당국, 또는 업계가 스스로 적극적으로 나서 증권사들의 먹거리를 찾아줘야 한다.
강 대표 = ‘전문가도 믿을 수 없다’, ‘수익이 안 나도 좋으니 원금손실 염려가 없는 상품에 넣는 것이 차선책이다’라는 인식의 확산이 문제다. 리스크(RISK)는 위험이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리스크는 잘못될 수도 있지만 지금 같은 저금리 시대에 현명하게 리스크를 받아들이고 관리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고는 풍요로운 삶을 살 수가 없다. 리스크를 제대로 이해시키는 교육이 시급하다.
△입사하실 당시만 해도 증권맨은 최고의 직업이었으나 지금은 예년 대비 인기가 시들해졌다. 문제는 무엇이며 업계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손 대표 = 애널리스트의 경우 과거 증권사 입사 공채 때 보면, 1순위 선호직업이었다. ‘증권사의 꽃’이라고도 불리지 않는가.
애널리스트 직군이 최근 위기를 맞게 된 것은 무엇보다 고액 연봉을 유지할 정도의 수익력이 뒷받침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법인영업직들도 인건비를 충당하기 어려울 정도다.
결국 애널리스트 업계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자기 몸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진짜 실력을 키워야 한다.
강 대표 = 자산운용사들의 경영진도 펀드매니저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지만 펀드매니저들 또한 선진국의 명펀드매니저들이 어떤 수련 과정을 겪어 실력 있는 펀드매니저로 성장해 가는지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
△국내 증권, 운용업계는 한정된 파이임에도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까.
손 대표 = 경쟁이 치열한 건 어느 산업이든지 그 산업 측면에선 긍정적이다. 수많은 경쟁을 물리치고 살아남는 회사는 결국 옥석으로 가려져서 어느 위기든지 굳건히 감내할 수 있다.
문제는 증권업계 측면에선 정당한 수수료를 받는 수준에서 경쟁이 이뤄져야 하는데, 저가 출혈 경쟁까지 가는 것은 업계 종사자들 스스로 지양해야 할 일이다.
강 대표 = 모든 자산운용사들이 백화점식 운용업을 하고 있는데 일부 대형사 이외에는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해 특화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투자자들에게 투자 철학을 제대로 설명하고 투자철학을 제대로 지켜나가고 있다는 점을 알리는 노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펀드 판매사들이 제대로 된 판매를 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운용사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그동안 재직하면서 금융당국의 스탠스가 걸림돌 혹은 도움이 된 적이 있었나. 금융산업을 규제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과연 옳은가. 앞으로 60년 자본시장에 대해 국가가 어떻게 뒷받침해주는 것이 좋을까.
손 대표 = 필요한 규제에는 동감하지만, 성공 사례로 꼽히는 영국의 빅뱅 같은 과감한 규제 철폐는 벤치마킹이 필요하다. 영국 빅뱅은 투자자들을 전문투자자와 일반투자자 두 분류로 구분하고 전문 투자자는 규제를 과감히 철폐했다. 아직도 국내에선 헤지펀드 도입 과정 등을 보면 실제로 손톱 밑 규제가 비일비재하다. 증권산업을 살리려면 전문투자자들만이라도 과감한 규제 철폐가 필수적이다.
강 대표 = 운용업은 기본적으로 창의력이 필요한 업이다. 따라서 운용업에 대해 규제 대상, 보호해야 하는 산업이라는 인식은 시급히 버려야 한다. 다만, 위법을 한 업자는 월가에서 보는 것처럼 아예 업계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중벌에 처해야 한다.